팀장님한테 들켰다.
아무 일도 못하고 어영부영보낸 지난 세월이 허무해 주변 사람들 모르게 넋두리나 늘어놓다가 시간 지나고 세월 흘러 지겨워지면 흐지부지 없애려던 애초의 계획에 변수가 생겼다. 하루 방문객수가 1000명 정도 되길래 많은 수는 아닌 것 같아 설마 실제 등장인물들이 블로그를 방문할 일은 없으려니 생각했지만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블로그가 들키다니 이글루가 네이버도 아닌데 한국이 좁나보다. 우리 나라에 영화사가 천개가 넘게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을까.
아무 생각없이 팀장님과 메신저로 다른 얘기 하다가 갑자기 <근데 블로그 잘 읽고 있어>라는 대사가 뜨길래 <드디어 올게 왔구나> 1초 정도 쇼크먹은 후 대화 주제를 바꿔 끝까지 아닌 척 하려다가 당사자가 읽었다면 모를 리가 없는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들이 증거라 발뺌도 불가능해 마음이 편치 않아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셔요> 라는 말이 진심으로 튀어나왔다.
다행히 우리 팀장님은 문화적인 교양과 센스가 뛰어나고 업무능력도 탁월하고 마음도 넓으셔서 나를 비난하거나 화를 내진 않으셨고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블로그나 만들었을까> 하고 너그러이 용서해주셨다. <대표님도 보셨냐>고 가슴 졸이며 여쭙자 아직 대표님은 안 보셨고 보실 일도 없을 거라고 하셔서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팀장님의 따뜻한 햇살 같은 배려에 감동이 밀려와 음지에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글 올린 시간도 신경쓰고 사건이 일어난 순서도 랜덤으로 배열하고 캐릭터들의 이름과 성도 바꿔서 현실 속의 등장인물들이 우연히 블로그를 발견한다해도 본인들의 얘기라는 걸 모르게하려고 했는데 우리 팀장님은 눈치 백단이셔서 그간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너그러이 용서를 받고 패닉 상태에서 벗어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간 적어내려온 글들을 하나하나 다시 일어보니 참 낯간지럽기도 하고 당사자가 읽었다면 미안한 글도 있어 매우 민망하긴 한데 그래도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진실된 애정이 듬뿍 담겨있는 글이 중간 중간 섞여 있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커밍아웃 후 공개사과도 고려해봤는데 어차피 내가 널리 알려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 인사도 아닌데 커밍아웃이니 아웃팅이니 고민하는 건 좀 웃긴 것 같다. 하여간 그동안 블로그를 통해 만난 익명의 님들과의 소중한 인연과 격려는 감사했고 정신건강에도 좋았지만 요즘은 슬슬 글쓰기가 힘에 겨워 차라리 잘됐다 싶은데 막상 없애려니 블로그가 울고 있는 느낌이다. 말 못하는 블로그도 애완동물처럼 감정이 있는 걸까. 어릴 적 집 나간 강아지가 생각난다.
아직 아는 사람은 팀장님 뿐이고 아무 말씀 안 하셨다니 감사할 따름이지만 실제 등장인물 중 한명에게 들키고나니 블로그 글쓰기가 스릴 있어졌다. 팀장님 말고 다른 누군가도 조용히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다. ㅎㄷㄷ...
p.s. 팀장님이 언젠간 꼭 좋은 영화 만드셔서 대박나길 진심으로 바라는거 아시죠^^?
덧글
마리 2007/11/07 14:58 # 답글
헉! 하루에도 열 번씩 들어와보던 블로그였는데...
이제 헤어지는건가요?-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개인적으로 몸담고 있는 곳과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쓰지 않는답니다.
소심해서 그런가봐요. 그런 스릴감도 좋을 것 같은데. ^^ - 헛.
- 에효. 저는 사생활 블로그라 더욱 그래요. 등장인물 모두 이니셜이고, 사건의 시간순서 바꾸고 설정 바꾸는 건 저랑 똑같네요 ^^ 들켜서 스릴 만점이시겠어요!!!!!!!!!
조심하는 수 밖에 없죠, 뭐. 더욱 암호스럽게 써야할 듯 해요, 저는. ^^ - 하루 방문객수 천명 정도면 충분히 많은 겁니다?
- 스릴 넘치는 블로그 생활이 되시겠네요~ 후후 ( 제 지인들은 알려줘도 제 블로그 별로 안 읽던데... ^^)
울트라맨 2007/11/07 15:37 # 삭제 답글
좋은 팀장님이십니다.
그런 정겨운 인연을 믿으며...
그 팀장님과 언젠가 대박 영화도 찍으시고, 좋은 이야기도 계속 전해주세요...
"혹시" 저도 아는 사람이라고 의심해보신 적은 없으신지요???..으헤헤- 어느 영화사인지 정말 궁금하군여.
영화 만들어지면 꼭 보고 싶은데, 궁금함을 어찌 참을찌 답답만 쌓여갑니다. - 참 좋은 팀장님이세요~
누군가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더래도 지금까지 지켜왔던 날카로움은 안 없어지면 좋겠습니다. - 예상외의 전개에 한치앞을 내다보기 힘들군요.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비밀유지가 된건가요? - 으으 그 당혹감이란;;
- 전 아직도, 이 모든게 소설같아요..
- 너그러우신 팀장님!
계속 운영자님께서 이 블로그 유지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힘들어하는 모든 영화인들의 희망의 보금자리를 부디 지켜주시옵소서.
그래서 망해가는 영화사에서 끝내주게 잘 나가는 영화사로
부활할 때까지 함께 웃고 울수 있게 도와주소서.
부탁드립니다. - 훈훈합니다. ^^
- 포털에서 '영화사'로 검색하니까 나와요....ㅠ.ㅜ
- 까분다
- 애드님의 포스트에는 항상 <희망>이라는 것이 어렴풋이 보이더군요.. <망해가는 영화사>는 30중반을 코 앞에 둔 저의 삶을 투영한 듯 해서.. 그 <희망>이라는 것에 살짝 질투도 해봤습니다.. 애드맨님의 건투를 빕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앞으로도 기대되네요ㅎㅎㅎㅎ
- 지금 술을 한잔을 한 상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만...
역시나 애드맨님의 글을 볼 때면 지금이라도 당장 만나 밥이라도 한끼하고 싶습니다...
해주지못하는 답답함을 참을 수 없을 때마다 느끼는 제 감정은...
차라리 내가 연예인이었다면(혹은 연예인을 잘 알고 있다면) 애드맨님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해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뿐이라는...
힘내라는 말을 글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천명이면 꽤 되는데요. ^^;; 큭큭. 어쨌든 상황은 재미있어(?)졌네요.
설마 글쓰기를 그만두시는 건 아니겠죠-! 안됩니다. 안돼요.
p.s가 무척이나 귀여우시네요 ㅋㅋ - 여기 오는 영화사 (유령) 직원 굉장히 많아요~ ㅋㅋ 언제는 이런일이 생길줄 알았답니다.
- 마리님 // 헤어지지 말아요 ㅎ
ArborDay님 // 그래서 익명으로 시작했었죠;;
라엘님 // 스릴 백점입니다.
老姜君님 // 소녀시대 발차기나 김주원 누드 같은 포스팅 때문에요;;;ㅋ
Lucida님 // 지인들은 싸이월드가 편하죠ㅋ;;
울트라맨님 // 팀장님 좋은 분이세요. 음...의심이 됩니다;;
이런님 // 제 이름 걸고 만든 영화가 개봉하면 표 보내드릴께요.
달콤베이비님 // 그렇게 되면 블로그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어요.
구경끈님 // 그런가요?;;
이방인님 // ;;;;;
LUNA님 // 저도 그래요.
알렉스님 // 아...감사합니다.
퍼프님 // 네ㅎㅎ
오사쯔님 // 헛...;;
난팀장님 // 안녕하세요.
Zzz..님 // 감사합니다...^^
ㅇ비공개님 // 그러게요.
마력덩어리님 // 글쎄요;;ㅋ
N님 // 아...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ㅋ비공개님 // 저도 재미없는 영화는 안봅니다. 님도 따뜻한 겨울 되세요^^
하치님 // 연예 관련 포스팅 때문에 천명이라서요;; 소녀시대 발차기 같은ㅋ
netphobia님 // 뜨끔하네요. 안그래도 찌질한데 걱정입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사실... 급기야 서초동 일대 영화사 리스트를 찾아보기에 이르렀었습니다. 흐흣. -ㅂ-ㆀ adman님 화이또.
- 무늬물고기님 // 괜한 수고를 하셨군요 ㅎ;;
- 저희도 울고 있으니 없애지만 마셔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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