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0일 월요일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명절 스트레스

 


내 주변에는 어릴 적 꿈은 영화인이었지만 철들고 나서부터는 꿈을 버리고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이 몇 명 있다. 그 친구들 중에는 가까운 친척 어르신이 제법 유명한 영화 제작자였기 때문에 영화의 꿈을 일찌감치 버린 친구가 있는데 어려서부터 영화 감독의 꿈을 키워왔지만 명절 때마다 영화 제작자 친척 어르신의 파란만장한 흥망성쇄를 지켜봐오며 자연스럽게 영화인의 꿈을 일찌감치 버렸다는 것이다.


영화 제작자 친척 어르신은 제작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해의 명절에는 멋진 옷을 입고 나타나 용돈도 푸짐하게 안겨주지만 흥행 실패한 해의 명절에는 잘 나타나지도 안았고 참석은 하더라도 기가 죽은 채 용돈은커녕 구석에서 술만 퍼마셔댔다고 한다. 영화일을 안하는 친척들은 매년 꾸준하게 사람처럼 살고 있는데 영화하는 친척이 그 모양이면 누구라도 선뜻 영화인의 길을 선택하긴 힘들 것이다.


해마다 명절만 되면 그 친구가 해주었던 영화 제작자 친척 어르신의 일화가 떠오르는 건 내가 지금 그 비스무리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참여했던 영화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만큼 흥행이 되고 소문도 나쁘지 않은 해의 명절에는 친척들 사이에서 실없이 목소리가 커지지만 참여했던 영화의 흥행이 저조하거나 망했다는 소문이 돌면 괜시리 목소리가 작아졌다. 친척 어르신들의 엑스트라로 출연시켜달라는 매년 반복되는 청탁 아닌 청탁도 참여했던 영화가 잘 됐을 때는 그다지 지겹게 들리지 않는데 참여했던 영화가 안 됐을 때는 무지하게 지겹게 들린다. 그나마 그건 어릴 적 얘기였고 좀 나이가 든 다음부터는 언제 내 영화 만드냐고 물어오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런게 전국민이 겪는다는 명절 스트레스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친척 꼬마가 영화 한다고 몇 년 째 삽질하는 거 뻔히 아는데 모른척하는 것도 이상할 것 같긴 해서 이래 저래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친구의 영화 제작자 친척 어르신이 매년 흥망성쇄를 겪었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척 어르신은 나름대로 능력 있는 영화제작자였던 것 같다. 매년마다 버라이어티하게 흥망성쇄를 겪었다는건 어찌됐건 영화를 만들어서 극장에 걸었다는 뜻이고 그렇게 매년 극장에 영화를 걸 수 있을 정도의 제작 능력이 있다는 건 요즘 시대로 따지면 씨네21 영화인 파워 랭킹 순위권에 가볍게 들수 있을 정도의 유능한 제작자라는 뜻이다.


우리 대표는 추석을 맞이해 오전 내내 업계 사람들에게 돌릴 선물을 준비하고 직원들에게는 백화점 문화 상품권을 하사하셨고 고향이 지방인 직원들을 위해 퇴근시간도 12시로 땡겨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을 환영하는 직원들은 별로 없었는데 일찌감치 명절 모임 불참 선언을 한 몇몇 직원들을 뺀 나보다 연상의 미혼 직원들은 지독한 명절 스트레스를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에게 추석 잘 보내라고 천편일률적인 단체 문자 보냈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다.

덧글

  •  이방인 2007/09/21 18:26 # 답글

    그, 그렇군요...
  •  아우라 2007/09/22 00:54 # 답글

    좀 낫군요.
    저흰 암것도 없이 받은거라곤
    '이번달 월급 못 나간다, 미안'이라는 이메일 한통...^^(<- 왜 웃음이...)
  •  netphobia 2007/09/22 02:04 # 답글

    컥...형 여기서 또.... -_-
    아~ 애드맨님 여기오면 왠지 낯설지 않아요 =_=;
  •  애드맨 2007/09/23 23:40 # 답글

    아우라님 블로그를 통해서 netphobia님 블로그를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니 정말 반갑습니다.ㅎㅎ
  •  검은머리요다 2007/09/24 12:14 # 답글

    '매년 사람같이 사는데..' 거참.. 가슴 아픈 문구네요. 애드맨님 이렇게 블로그에서 아는 분을 하나씩 만들다보면. 소문다나시겠습니다..
  •  애드맨 2007/09/24 15:17 # 답글

    검은머리요다님 // 블로그 설명에 실화절대아님이라고 써두었으니까 괜찮아요.ㅎㅎ
  •  LeAn 2007/10/29 14:39 # 답글

    명절때 그 흔한 김한상자 들고가 본지가 어언;;

    작년에는 제돈으로 사가지고 가서 모른척 드렸는데
    어머님 어찌나 눈치가 900단이신지
    '이거 니가 사온거아니야?' 완전뜨끔 땀삐질;;;;

    영화사직원 어머님도 5년차면 그리 되시나 봅니다 ^^;;
  •  애드맨 2007/10/30 01:03 # 답글

    LeAn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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