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0일 월요일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부동산 투어

 


사실은 얼마 전부터 대표의 지시 하에 부동산을 알아보러 다니는 중이다.

지금 사무실의 반 값으로 지금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야 하고 지금 사무실보다 아주 많이 작지 않아야 하며 인테리어가 쪽팔리지 않을 정도로는 되있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부동산을 보러 다니고 있다.


부동산 직원을 따라 사무실을 보러 다니다 보면 망해 나간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제법 많다는 사실에 하루에 한번씩 놀라고 있는데 그 중에는 양아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름의 연예 기획사,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연예인을 데리고 있는 연예 기획사, 무슨 영화를 제작했다는건지 도무지 모를 영화사, 얼마 전에 개봉했다가 쫄딱 망한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가 종류별로 다양하게 있는데 공통점은 모두 월세를 제대로 못내서 건물주와 사이가 안 좋았다는 것이다.


맨 처음 부동산에 들어가서 사무실 알아보러 왔다 그러면 업종을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영화사라 그러면 일단 인상 한번 찌푸린 후 건물주에게는 영화사라고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받는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지금 나온 물건 중에 내가 말하는 조건에 딱 들어맞는 물건이 있긴 한데 건물주가 월세도 제대로 못내다가 떠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이미 겪어봤기 때문에 연예영화업종은 기피대상 1호라는 것이다.


증시에서뿐만 아니라 강남 부동산에서조차 엔터테인먼트 업종의 위상이 이렇게까지 추락했구나 싶어 착찹하긴 하지만 절대 건물주에게는 영화사라고 하지 않겠다고 믿음을 준 후 사무실을 구경하고 사진 몇장 찍어서 대표에게 보여주면 100퍼센트 눈에 차지 않는다.


지금 사무실의 반값으로 지금 사무실과 비슷한 수준의 사무실을 구한다는 건 무한도전만큼이나 불가능해보이는데 걔들은 도전하고 출연료라도 받지만 나는 아직 월급도 못 받았다.


사무실 크기가 맞으면 인테리어가 안되있고 인테리어가 맘에 들면 크기가 안 맞고 크기와 인테리어가 제법 괜찮으면 위치가 맘에 들지 않고 모든 조건을 충족하면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식이다.


대표도 이미 부동산 사전 정보가 풍부해서 어디 어디 위치한 건물이라고 대충 얘기해주면 아 거기 예전에 아무개 회사 있던 데 아니야? 다 좋은데 크기가 작았던 거 같은데. 하는 식으로 YES or NO가 바로 나와 얘기가 빨리 진행된다. 그도 그럴게 지금 사무실을 구하면서 이미 근처 부동산은 한번 다 돌아 보았다고 한다.


싸고 질 좋은 사무실 구하기 프로젝트 덕분에 하루종일 원작 아이템 찾는다는 핑계로 모니터만 들여다보며 살다가 바깥 세상 구경도 하고 부동산 직원에게 근처 건물들 비하인드 스토리도 듣고 물건 나온 거 보고 바로 퇴근하기도 하며 내 마음대로 생활할 수 있어 좋기는 한데 사무실 잘 구한다고 못 들어간 영화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한번씩 망해나간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을 볼 때마다 우리 회사의 앞날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려온다.

덧글

  •  Lucida 2007/10/11 18:45 # 답글

    이거야말로 완벽한 로드무빈데요^^
  •  이적 2007/10/11 21:36 # 답글

    여자나 부동산이나 비슷하군요.
    얼굴과 개념 둘중하난 포기해야 됀다는 점이....

    뭐 레벨만 높다면 둘다 풀스텟인 것으로 헌팅할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인생이란 게임은 현질이 안돼나요?
  •  N 2007/10/11 22:03 # 삭제 답글

    식사나 한번 같이 하고 싶네요...
  •  애드맨 2007/10/12 01:14 # 답글

    Lucida님 // 스케일이 너무 작아서요;; 반나절이면 다 돕니다ㅋ
    이적님 // 생각해보면 비슷한거 굉장히 많습니다ㅎ
    N님 // 언젠가 그럴 날이 오겠죠. 어쩌면 이미 식사 한번쯤은 했을 수도~^^~
  •  아슈 2007/10/25 12:10 # 답글

    N님 만나실때 저도 껴주세요..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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