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2일 수요일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줄

 


성공하려면 줄을 잘 서야 한다는데 나는 지금 누구 뒤에 서 있는 걸까?


줄 잘서기는 조직에서 살아남는 처세술일뿐만 아니라 당장 다음 분기를 내다보기 힘든 변동이 심한 영화판에서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주식시장에서는 줄을 잘 서야 돈을 벌 수 있지만 영화판에서는 줄을 잘 서야 영화를 할 수 있다. 줄 한번 잘 못 서면 비리비리한 마이너로 충무로 언저리만 서성이다 영화 인생이 끝나기도 한다. 이 좁은 영화판에서 주류 비주류 마이너 메이저 구분하는게 우습긴 하지만 줄과 족보를 따지는 분도 있고 하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누구랑 친한지, 누구랑 자주 어울리는지, 어제 누구랑 술을 마셨는지, 누군가와 마지막으로 통화한지가 언제인지, 어떤 소문이나 정보를 누구를 통해 몇 다리 거쳐서 듣게 되는지에 대해 유독 민감하고 1주일 내내 점심 약속이나 술 약속이 없으면 괜시리 초조해지기도 한다. 우디알렌이 영화일이란 미팅의 연속이라고 했듯 사람을 만나야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고 친한 사람들이 다 백수라면 영화하기 쉽지 않다.


혼자 방구석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쓰고 패밀리 펀드나 X고생하며 번 돈으로 단편이나 독립 장편영화를 만들고 영화제에 목숨을 거는 이유도 결국 영향력 있는 누군가와의 줄을 잡아 남의 돈으로 뽀대나게 장편 상업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판에서 요즘 제일 잘나가는 줄은 어디일까?


한화 증권 전병서 리서치센터장에 의하면 지난 5년간 세계 정세를 관통하는 큰 줄은 중국이었고 그 전까지 증시를 이끌었던 미국이란 줄을 고집한 이는 낭패를 봤다고 한다.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 정세 속에 2006년 스코어 10편 중 9편 쪽박, 2007년 현재 스코어 지난해와 비슷한 개봉 편수에 점유율은 하락이란 암울한 성적의 한국 영화 시장에서 잘 나가는 줄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작년 중순쯤에 앞으로 한국에서 영화하려면 C사 계약 피디말고는 답이 없다는 말이 나왔었는데 거의 정답인 것 같지만 그동안 C사에서 자체제작하거나 메인투자배급한 영화들의 성적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결국 시장의 절대 불황 앞에선 모든 줄이 다 시원찮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불황 앞에서는 잘 나가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 묻어가기도 통하지 않는다. 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나 기관이 판단하는 주도주를 따라 사서 장기 보유해도 꽤 괜찮은 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거 없다.


미녀는 괴로워 김용화 감독과 그놈 목소리 박진표 감독이 연타석 홈런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감독의 차기작 복수는 나의 것. 스캔들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소녀,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스타 등 명품 초일류 브랜드 감독의 작품이라도 차기작 흥행은 예상할 수 없다는게 정설이다.


금융시장불안, 부동산 경기침체, 유가급등 그리고 블랙먼데이에 이은 증시 폭락.

한국 영화계의 앞날이 걱정되서 잠이 오지 않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말 줄을 잘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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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sblank님의 글 - [2007년 10월 23일, 화요일] 2007-10-23 01:22:31 #

    ... 안봐서 서평도 거의 본 적이 없네. 좋은(?) 서평을 받은 책이 대형서점 절대 우위를 차지한다니 결국 서평 못 받은 책은 서점에 놓이는 것 조차 어렵게 되는건가..'좋은'은 돈과 의 비중이 클듯 오전 1시 22분 책 ... more

덧글

  •  NINA 2007/10/23 08:51 # 답글

    지금 보니 JSA보다 복수는 나의 것이, 스캔들보다 다세포소녀가, 왕의 남자 보다 라디오스타가- 전 훨씬 더 좋았군요.
  •  마리 2007/10/23 09:16 # 삭제 답글

    저는 '왕의 남자'가 어째서 그렇게 인기였는지 알 수가 없어요..저도 보긴 봤지만. 내용상으로는 특별할 것도 없어보였는데...

    그러고보니 제가 정말 재미있겠다 싶은 영화들은 대부분 상영관을 못잡거나, 잡아도 일주일 안에 내려가거나 했군요. 차별당하는 것 같아 슬펐습니다.
  •  애드맨 2007/10/23 19:50 # 답글

    NINA님 // JSA, 복수는 나의 것, 스캔들, 다세포소녀, 왕의남자, 라디오스타 중에선 복수는 나의 것이 제일 좋아요.
    마리님 // 저주받았다고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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