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0일 월요일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엔터株

 


이건 절대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얘기가 아니고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친구의 친구가 아는 사람 얘기일 뿐이다.


과연 올해 몇 개의 엔터株가 살아남을지에 대한 분석기사가 올라올 정도로 영화업계가 불황인 요즘이지만 한 때는 엔터株가 엄청난 수익률로 증시의 화두였던 시절이 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하여간 그 좋았던 시절에 내 친구의 친구가 아는 사람은 다니던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사장 말만 믿고 듣보잡 회사에 투자를 했다고 한다. 친구가 아는 사람의 사장은 조만간 아무개 회사의 주가가 인수합병등의 호재로 폭등할 예정이니 날 믿는다면 따라오라고 했고 순진한 사회 초년생이던 그 친구는 그래도 사장이니까 사장 말만 믿고 과외 등으로 한 평생 모아둔 돈을 올인해 아무개 회사의 주가를 매수했다.


몇 달 후 사장의 말대로 아무개 회사의 주가는 폭등했고 이게 왠 떡이냐 싶었던 그 친구는 ‘사장님 덕분에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에 팔면 될까요?’라고 물어봤는데 사장은 ‘지금까진 예고편일 뿐이다. 앞으로 100프로는 더 먹을 수 있다. 날 믿는다면 계속 따라오라‘며 호언 장담을 했다.


우리 존경하는 사장님 덕분에 공돈 생겼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도 하고 인심좋게 회사 사람들에게 술도 사고 흥청망청 지낼 때까진 좋았다. 그러나 어느날 아무개 회사의 주가는 100프로 오르기는커녕 폭락에 폭락을 거듭하기 시작 몇 일후 투자금은 반토막이 나버렸고 피눈물을 흘리며 손해를 감수하고 주식을 다 처분했다고 한다. 사장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오른다고 힘을 내라고 했지만 아무개 회사의 주가는 친구가 다니는 영화사가 망하고도 한참 뒤인 오늘까지도 원상복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친구는 사장의 추천주에 올인했다가 입은 손해가 사장에게 받은 월급의 몇 배에 달하지만 그래도 월급을 주는 사람이니 뭐라고 항의도 못하고 망연자실한 얼굴로 묵묵히 출퇴근을 반복하며 좀비처럼 살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몇 달 후엔 월급마저 밀리다 끊겨버렸고 얼마 뒤엔 회사마저 망하는 바람에 홧병에 걸려 시름 시름 앓다가 지금은 술독에 빠져 지내며 밀린 월급 대신 사무실에서 A4용지라도 몇 권 들고 나와야겠다고 울분을 토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고 한다. 주식 올랐다고 술을 살 때 잘 얻어먹던 동료 직원들이 주가 떨어졌다고 위로주를 사는 일도 물론 없었다. 망한 회사의 사장은 또 다른 일을 하면서 잘 살고 있다고 하니 그 친구도 회사 망하고 주식으로 돈 잃었다고 술독에 빠져 지내지 말고 하루 빨리 재기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서울은 정글. 눈 뜨고 있어도 코베어가는 동네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잠깐이나마 엔터주에 투자한 적이 있다. 내가 투자했던 회사는 이 포스트에 언급된 회사 중 하나인데 아직까지 그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답답해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절대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친구의 친구가 아는 사람 얘기일 뿐이다.

덧글

  •  Labyrins 2007/10/09 15:44 # 답글

    갑자기 떠오른 디씨 유식대장의 만두, 유산슬 떡밥등이 생각나네요.
    특히 유산슬 떡밥은 딱 위의 경우와 흡사하네요.
    역시 사람은 적당히 먹었을때 물러서야 하는 법....
  •  Lucida 2007/10/09 21:59 # 답글

    밥 먹고 사는 일은 참으로 힘겹지요?!!
  •  애드맨 2007/10/09 23:16 # 답글

    Labyrins님 //
    저녁으로 만두 먹었습니다. 식기 전에 먹어서 맛있었어요.

    Lucida님 //
    힘들다고 말하면 저 놈 아직 멀었다고 할것 같구 안 힘들다고 말하면 웃긴놈이라고 할 것 같구.
    어려운 질문이네요.ㅎㅎ
  •  앵벌천국 2007/10/10 10:28 # 답글

    요즘 증권가의 떡밥으로 급 부상한
    모 가수와 모 기업이 생각나는군요.
  •  애드맨 2007/10/10 13:25 # 답글

    앵벌천국님 // 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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