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0일 목요일

쪽박 감독 vs. 입봉 감독

 


쪽박 영화 감독과 대박 영화 조감독 출신 입봉 준비 감독에게 마이너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될 지도 모를 케이블 드라마 연출을 맡을 의향이 있는지 전화로 물어보았다. 쪽박 영화 감독과 입봉 준비 감독 중 누가 더 케이블 드라마 연출에 적합한 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쪽박 영화 감독은 연출력은 검증받았지만 쪽박 영화 감독이라는 사실이 왠지 불길하고 입봉 감독은 연출력은 검증받지 않았지만 대박 영화 조감독 경력이 든든하게 느껴진다.

영화건 케이블이건 드라마건 어차피 흥행은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 누가 운이 좋고 누가 운이 나쁜 지는 필모그래피를 보면 알 수 있다. 살다보면 무슨 일을 해도 잘 풀리는 사람이 있고 무슨 일을 해도 안 풀리는 사람이 있듯이 영화인 중에서도 나처럼 쪽박 영화만 했던 사람이 있고 반대로 대박 영화만 주로 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참여하는 영화마다 엎어지는 바람에 쪽박 영화조차 만들어보지 못하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영화인도 많다. 아마 쪽박 영화조차 못 만들어본 영화인의 수가 쪽박 영화인과 대박 영화인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을 것이다. 쪽박 영화조차 못 만들어본 사람들이 왜 영화인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도 잘은 모르겠다.


어떤 영화인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해도 쪽박 영화만 줄창 해왔다면 운이 나쁜 사람인 것 같고 다음 영화도 쪽박일 것 같아 왠지 꺼려지는 반면에 아무리 무능하고 성질도 더러운 영화인이라도 대박 영화들만 줄창 해왔다면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고 다음 영화도 대박일 것 같아 친하게 지내고 싶고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한다. 한 마디로 쪽박 영화 감독보다는 대박 영화 조감독이 느낌이 좋다는 얘기다.


그래서 대박 영화 조감독 출신 입봉 준비 감독에게 먼저 케이블 드라마 한편 연출해보지 않겠냐고 전화로 물어보았는데 예상대로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아무리 한국 영화가 힘들다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마이너리그보다 못한 동네리그로 내려가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첫단추를 잘못 끼우고 싶진 않다는 것이다. 변두리 신생 영화사에서 케이블 드라마를 만드느라 시간 허비하고 이미지에 먹칠 할 바에야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의 시나리오를 한 줄 더 다듬겠다고 한다. 똑똑하다. 좀 얄밉긴 하지만 역시 대박 영화 조감독 출신은 다르다.


입봉 감독에게 거절당하자마자 쪽박 감독님에게 전화를 걸어 케이블 드라마 한편 연출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쪽박 감독님은 안 그래도 요즘 아는 작가 한 명과 함께 차기작 준비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타이밍이 매우 적절했다며 미팅은 빠를수록 좋다고 하신다. 아이템이 뭔지 대충 설명해주자 미팅 전까지 작가에게 준비 시킬테니 결과물로 얘기하자고 하신다. 혹시 아는 작가인가 싶어 작가가 누구냐고 물어보니 신인이고 남자라고 한다.


요즘 트렌드에 맞게 여자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케이블 드라마로 만드려는데 감독 남자, 작가 남자, 팀장 남자, 인턴 남자, 대표도 남자다. 정작 미모의 여자 마케팅 팀장은 이게 무슨 여자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냐며 혐오스럽다고 한다. 솔직히 나도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잠이 안 온다.

덧글

  •  비타민 2008/04/08 02:15 # 삭제 답글

    으음... 설마 애드맨님이 쓰신 시나리오가 "여자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일 줄은 며느리도 몰랐을 겁니다.
  •  krzys 2008/04/08 06:07 # 삭제 답글

    애드맨님에게 며느님이 계셨군요. (뭔솔인지...)
  •  newt 2008/04/08 09:27 # 삭제 답글 비공개

    sex & the city같은 건가요? 궁금해요~! ^^
  •  은재 2008/04/08 09:52 # 삭제 답글

    어제 점심시간 티타임때...대표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멋진 남자이야기는 여자들이 잘 만들고,
    멋진 여자이야기는 남자들이 잘 만든다.
    왜? 로망이 있으니까. ^^;
    작년에 좀 흥행에 실패하시긴 했찌만...
    흥행작을 여러편 내신 분이니까... 아마 맞을지도?
    ^^ 잘... 될 거라는 무모한 화이팅만 드릴 뿐이예요.
    뭐든 하고 있다는 게 소중한 한국영화시장입니다.ㅠ
  •  에른스트 2011/10/11 14:25 # 삭제

    멋진 남자이야기는 여자들이 잘 만들고,
    멋진 여자이야기는 남자들이 잘 만든다.

    정말인가요?
  •  지랄오발탄 2008/04/08 09:54 # 삭제 답글

    ero?
  •  pd nim 2008/04/08 09:58 # 삭제 답글

    요즘 케이블 트렌드라면..ㅋㅋ
  •  정시퇴근 2008/04/08 10:15 # 삭제 답글

    솔찍담백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여자들이 볼지 남자들이 볼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  달빛이야기 2008/04/08 16:02 # 삭제 답글

    혐오까지;;
  •  술과고기 2008/04/08 20:02 # 삭제 답글

    시작이 반입니다. 일단 밀고 나가보심이...
  •  gaya 2008/04/08 20:35 # 삭제 답글

    여자 팀장이 봐서 혐오스러울 정도면.....그다지 기대 못하겠군요. --;;;
    그분이 유난히 보수적이거나 평균이상으로 까탈스런 게 아니라면 여자 이야기에 대해선 그분 평이 더 맞을 겁니다.
    작가부터 죄다 남자로 꽉 채워놓고 상대 성의 속사정을 알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런 건 눈으로 관찰한다고 될 게 아닙니다.
    선남 선녀 커플의 로망 충족 판타지라면 또 모르되, 솔직담백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면 다시 생각하셔야 할듯..
    계속 그런 식이었으니 남자들이 만드는 (소위 진솔하답시는) 여자들 이야기치고 여자 캐릭터부터 제대로 만들어낸 거 없습디다.
    섹스 지상주의거나 것멋만 잔뜩 들어있거나, 남자들이 생각하기 쉬운대로 묘사된 겉핡기식 여성상만 흔하지요.
  •  에른스트 2011/10/11 14:26 # 삭제

    시골사람이 도회지 사정을 더 잘안다는 말도 있긴합니다.
  •  애드맨 2008/04/08 23:19 # 수정 삭제 답글

    비타민님 // 솔직담백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krzys님 // ㅋㅋ

    n비공개님 // 비교당하고 싶습니다 ㅋ;

    은재님 // 그러게요 뭐든 하고 싶습니다 ^^

    지랄오발탄님 // 아뇨.

    pd nim님 // pd님이세요?ㅎ

    정시퇴근님 // 저도 모르겠습니다;

    달빛이야기님 // 이해합니다 ㅎ

    술과고기님 // ^^~~

    gaya님 // 너무 정확하게 지적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세심하고 꼼꼼한 모니터에 감사드립니다. 반성하겠습니다.

  •  NINA 2008/04/10 02:11 # 삭제 답글

    어느 순간 부터 애드맨님 포스팅이 픽션인지 아닌지 모르게 되어서 댓글을 달 수가 없어요-
  •  애드맨 2008/04/10 12:29 # 수정 삭제 답글

    NINA님 // 소중한 덧글에 감사드립니다 ^^
  •  라엘 2008/04/12 21:09 # 삭제 답글 비공개

    (헉. 리플에 실존인물들이 등장하고 계신 건가요?)

    저도 예전 영화투자사 나오기 전에 저희가 투자하려던 영화사의 작품이 솔직담백 러브러브 섹시 어쩌고 저쩌고 드라마였거든요. 남자 작가님은 프라이드 갖고 멋지게 잘 쓰셨는데, 그때 우리회사 모든 여직원들이 혐오스럽다 했었어요. 그 이후로 그 작품은 어디로 흘러흘러 갔을지 모르겠네요. 지금쯤 영화화 준비가 제대로 들어갔을지...

  •  고르기아스 2017/03/02 17:22 # 삭제 답글

    너무 웃겼어요. ㅋㅋㅋㅋㅋ 사무실에서 대박 웃음~~^^ 마지막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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