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들이 일을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해서 좀 짜증난다.
그들은 아직은 보드라운 살결과 풋풋한 젊음 그리고 뜨거운 열정으로 왜 하필이면 영화일을 선택했을까? 대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인턴도 있고 졸업하고 난 후 취업 전선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시다 온 인턴도 있고 과거에 모 영화사에서 아르바이트 비슷한 일을 했던 경력의 인턴도 있다. 다 좋은데 누군가는 망해가는 한국 영화를 살려야 할 것 같아서 영화사에 오게 됐다는 인턴은 좀 부담스럽다.
아마 대학교를 졸업하고 구직전선에 나서 하릴 없이 세월을 보내다 영화사 인턴으로 첫 출근하고 몇 일간은 행복했을 것이다.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자신들의 인생이 꼬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 눈치 빠른 인턴은 알아서 나갔다지만 영화라는 꿈이 너무 소중하거나 사회 경험이 전무한 인턴들은 대학교에서 교수 말을 잘 들으면 A학점 받듯이 영화사에서도 윗 사람들 말 잘 듣고 시키는 일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뭔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뭐...나도 그랬다.
내가 처음 출근했을 때 그들은 마냥 행복하고 설레이던 인턴 초년생 시절을 뒤로 하고 다들 회사에 오면 뭘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침에 힘들게 일어나 출근 시간에 늦을 새라 허둥지둥 일어나서 출근은 하지만 막상 출근하고 나면 딱히 할 일이 없는 아이러니라니... 영화일을 하면 집에도 못 들어갈 만큼 바쁘고 한달만에 체중이 10kg정도는 빠질 정도로 힘들다는 소문을 듣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영화사에 들어왔는데 막상 들어오고나니 대학교 다닐 때보다 한가한 것이다.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일거리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1년 동안 만들어지는 한국 영화가 너무 많아서 탈이라는 인터넷 뉴스만 읽어왔으니 영화사라고 다 영화를 만들고 있으리란 법은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들어온게 잘못이다.
솔직히 할 일이 없어서 당황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진데 그렇다고 인턴들을 출근시켜놓고 마냥 놀릴 순 없고 뭔가 의미있는 일을 시켜야 될 것 같아 일단은 사무실 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시나리오 정리를 시켜보았다. 하염없이 인터넷으로 네이버와 싸이월드만 뒤적이고 있던 인턴들은 시나리오 정리 임무가 주어지자 누구보다 열심히 시나리오 정리 작업에 임했다. 누군가 어떤 기준으로 시나리오를 정리해야 되냐고 물어왔는데 인턴들끼리 회의해서 결정한 후 보고하라고 했다.
자기들끼리 한참을 회의를 하더니 이런 기준으로 시나리오들을 정리하겠다고 보고해왔다. 나는 잠깐 생각해보는 척 한 후 그렇게 하는 것도 좋은데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라고 의견을 제시했더니 그거 참 좋은 생각이라며 대번에 내가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한국 영화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한테 잘보일 필요는 전혀 없는데 속보이지 않게 아부성 멘트를 날리려고 노력하는 인턴들에게 조금은 미안했다. 그렇다고 허심탄회하게 진실을 말할 수도 없고 먼 훗날 인턴들끼리 모여 과거를 회상하며 그 때 그 새끼 참 웃긴 새끼였어라는 소리만 안 들을 정도로 겸손하게 처신해야겠다. 가끔씩 술 좀 사주고 영화 시사회에 데리고 다녀주면 참 괜찮은 놈이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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