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0일 목요일

전직 영화사 직원의 해고당하고 인간관계 유지하기

 

 

2008년이다. 2007년 마지막 날의 반나절을 최홍만과 효도르의 경기를 기다리며 텔레비전 앞에서 보내고 나니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경기를 기다리는 도중에 간간이 핸드폰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안부 문자가 몇 통 왔는데 단체 문자로 의심되는 번호에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문자 몇 통을 받고나니 어쩐지 나도 안부 문자를 보내야되는게 아닐까 고민이 되서 잠깐 네이트온에 접속해 새해 복 어쩌구 문자를 입력하다가 그냥 귀찮아서 컴퓨터 꺼버리고 이종격투기 경기를 마저 보다가 2008년을 맞이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니 비단 작년 뿐만 아니라 한 해가 갈때마다 길가다 우연히 만나면 껄끄러울 것 같은 사람들 리스트가 늘어간다는 <애드맨의 법칙>을 발견했다. 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만나면 껄끄러울 것 같은 사람들만 점점 늘어가고 만나면 반가울 것 같은 사람들은 줄어드는지 잠깐 고민해봤는데 이게 다 내가 못난 탓이었다.


만나면 껄끄러운 사람들 대부분은 안 좋게 헤어졌거나 안 좋은 일은 없었지만 인연이 지속되는 동안 좋은 일이 없었던 경우인데 작년에는 안 좋게 헤어진 사람들도 많았고 안 좋은 일이 없더라도 인연이 지속되는 동안 좋은 일이 없었던 사람들도 많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니뭐니 해도 한때 충성을 다짐했던 영화사에서 경영상 해고당했던 일인데 당시엔 몰랐지만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비공식업무일지를 쭉 한번 훝어보니 제법 트라우마가 컸던 것 같다. 파란만장했던 망해가는 영화사에서의 추억들도 이제는 그저 스쳐지나갔던 수많은 영화사에서의 추억들 중 하나일 뿐이라 더이상 특별할 것도 없지만 블로그에 연재까지 하고나니 유난히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비록 해고는 당했지만 인간관계까지 소원해진 건 다소 아쉬운데 망한 영화의 스텝들이 그렇듯이 망한 회사의 직원들도 아무런 껀수 없이 따로 연락해서 만나거나 안부전화라도 자주하기가 쉽지가 않다. 사랑하는 할머니에게도 살다보면 연락을 자주 못드리게 되는데 그저 같은 회사에 잠깐 같이 다녔을 뿐인 동료 직원들은 소원할 수 밖에 없다.


나만 빼고 다른 직원들끼린 자주 연락하고 친하게 지내는 건 아닌지 걱정은 되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안그래도 직원 한명이 얼마 전에 송년회를 주최하려고 했었는데 다들 그날은 약속이 있어 힘들다는 이유로 무산되고 말았다.


나는 참석하려고 했는데 막상 참석하려고 생각하니 분위기가 영 편하지는 않을 것 같아 일이 생겨서 힘들겠다고 문자를 날렸는데 나 뿐만 아니라 다들 일 때문에 힘들다고 해서 송년회는 취소라는 답장이 왔다.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나보다.


올해는 해고당하고도 인간관계 유지하기는 바라지도 않고 다만 길가다 우연히 만나면 껄끄러울 것 같은 사람들 수만이라도 좀 줄여봐야겠다.

덧글

  •  애드맨올드팬 2008/01/01 02:26 # 삭제 답글

    애드맨님. 죄송한데 흥행예상 글은 재미없어요.
    그냥 비공식업무일지나 자주 연재해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랄라.
  •  Labyrins 2008/01/01 11:22 # 삭제 답글

    저는 흥행예상 글도 잘 보고 있습니다.
    계속 예상해 주세요. 화이팅!
  •  알렉스 2008/01/01 13:10 # 삭제 답글

    저도 흥행예상 글 잘 보고 있습니다 2인....
    애드맨님께 올해 좋은 일 많이 생기셔서
    껄끄러운 인간관계 쫀득쫀득하게 만드시길 바랍니다.
  •  심리 2008/01/01 22:24 # 삭제 답글

    저도 흥행예살 글 잘 보고 있습니다. 3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시고요. 건강이 재산입니다.

    말씀하신 이야기 저도 경험으로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좋은 일이 있고 보람이 있고 아름다운 추억이 있어야 그 기억을 함께 하려고 모이는 건데, 씁쓸한 일이지요.
    부디 앞으로는 좋은 경험하시고 반가운 분들이 생기기를 기원 드립니다.
  •  라엘 2008/01/03 00:57 # 삭제 답글

    올드팬도 계시고. 쿠쿠.

    저도 <애드맨의 법칙>에 버금하는 <엘의 법칙>이 점점... 쿠쿠. 엘의 법칙은, 길가다 나 만나면 당황해서 도망갈 것 같은 사람들의 리스트가 늘어난다는 것이지요. 핫핫. 나한테 잘못한 인간들 숫자가 늘어가거든요. 이런 젠장할.
  •  오사쯔 2008/01/03 13:04 # 삭제 답글

    저도 흥행예상 잘 보고 있습니당. 4인.
    새해 좋은일 생기길 바랍니다!
  •  애드맨 2008/01/03 13:09 # 수정 삭제 답글

    다들 감사합니다. 흑...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
  •  단우 2008/01/03 19:10 # 삭제 답글

    요샌 어떤 한국영화도 기대가 되지 않아요 ㅜ_ㅜ
  •  애드맨 2008/01/03 23:36 # 수정 삭제 답글

    단우님 // 기대되는 작품은 많은데 흥행에선 우려가 많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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