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3일 목요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죄인(sinner)' 시즌3을 보고..





임신한 아내와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는 고등학교 선생님 번스에게 옛 남자 친구가 찾아온다. 친구가 번스를 바라보는 눈빛이 묘해 옛날에 사귀기라도 한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개똥철학을 공유했던 매우 친한 친구일 뿐이다. 그 친구는 진정한 자유 운운하며 속박에서 벗어나 죽음을 마주하라며 번스에게 랜덤 살인을 강요하는데 번스는 친구의 강압에 저항하다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친구를 내버려 둬 과다출혈로 죽게 만든다. 이 타이밍에 해리 엠브로스 형사가 등장하고 번스에게 뭔가 수상한 구석이 있고 위험 인물이라고 판단한 후 스토커처럼 추적한다. 번스는 친구의 망령에 시달리다 살인을 저지르고 해리는 번스의 신뢰를 얻은 후 자백을 이끌어내 체포하지만 번스는 곧 증거 부족으로 풀려난다. 모든 걸 잃은 번스는 해리의 소중한 이들을 살해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외딴 오두막에서 만난 두 사람은 최후의 결투를 벌인다. 결투는 해리의 승리로 끝나지만 해리는 더 이상의 저항 의사가 없는 번스를 총으로 쏴 죽이고 새로 사귄 애인을 찾아가 슬픔을 호소한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중2병 개똥철학 연쇄 살인마 이야기이다. 해리는 번스에게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고는 하는데 딱히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고 끝까지 밝혀지지도 않고 해리 역시 별로 하는 일이 없다. 막판엔 저항 의지도 없는 번스를 왜 총으로 쐈는지도 모르겠다. 퇴직도 얼마 안 남았다면서 애당초 왜 그렇게 번스에게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시즌1,2에 이어 여전히 캐릭터는 매력적이고 분위기는 근사하지만 여러모로 왜 저러는지 모르겠는 미스터리만 남긴 시즌이다.


2020년 7월 10일 금요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오늘 했어야 하는데 하지 못한 일들이나 미처 답을 찾지 못한 일들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보통 새벽 2~3시쯤 잠이 들거나 밤을 새기도 하는데 어제는 11시쯤 확 자 버렸다. 어차피 밤늦게 허둥지둥 뭔가 시작해봤자 제대로 될 리가 없고 밤 잠 설치며 생각을 해 봤자 답이 나올 리 없기 때문이다. 에라 모르겠네 다 포기하고 눈을 감고 드러누워 버리자 예상 외로 순순히 잠이 들었고 나이 때문인지 새벽 3시쯤 눈이 번쩍 떠졌는데 뜬금없이 방 한 가득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재활용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새벽에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해서 바리바리 싸들고 나가 분리수거함에 잘 분류해서 버렸고 이왕 밖에 나온 김에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새벽 조깅이라도 하면 어떨까 해서 동네 한 바퀴를 달려보기로 했다. 큰 길로 나오자마자 비가 쏟아져서 다시 집에 들어갈까 했지만 간만에 비도 좀 맞아보고 싶어서 계속 달렸는데 촉촉하고 시원하고 이상하게 상쾌해서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마스크를 안 쓰고 있어서였다. 사람들 눈치 안 보고 마스크 없이 길거리를 달려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코로나 이후론 처음이니 최소 반년쯤? 속이 다 시원했다. 3km쯤 달린 것 같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동네 한 바퀴를 달리고 왔더니 이렇게 저절로 글도 써진다. 이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2020년 5월 3일 일요일

넷플릭스로 '어페어(the affair)' 시즌3 ~2회를 보고..



시즌1,2까지는 식음을 전폐하고 논스톱으로 빈지워치했는데 시즌3 2회에서 브레이크가 걸렸고 3회를 보다 만 상태인데 어째 이쯤에서 이별하게 될 것 같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휴가를 온 고등학교 교사이자 무명작가인 유부남과 휴양지에서 살고 있는 웨이트리스이자 유부녀의 불꽃 튀는 불륜 이야기를 매 회 파트를 반씩 나눠 번갈아가며 회상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똑같은 사건을 각각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고 둘의 불장난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시즌2에서야 이야기가 일단락이 되는데 엔딩도 과연 이거 말고는 답이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절묘하다. 남자 주인공 노아의 데뷔작을 말아먹은 이후 긴 슬럼프와 우여곡절 끝에 성공의 단맛을 본 후 다시 몰락에 이르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고 베드신들도 수위가 굉장히 쎄다. 무엇보다 여자 주인공이 연기가 끝판왕이다. 그냥 얼굴 자체가 드라마다. 시즌2 다 보고 감동해서 나도 모르게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시즌3은 후일담이나 에필로그 느낌으로 시작하는데 2회까지는 그럭저럭 볼만 했지만 3회부터는 새로운 인물의 이야기가 시작되며 전혀 다른 드라마가 시작되려는 듯 한데 애초에 이 드라마의 매력과는 무관한 느낌이라 그만 보려면 지금이 타이밍 같다. 훌륭한 쇼였다. 나는 쇼타임 드라마랑 잘 맞는 것 같다.

2020년 4월 12일 일요일

DC코믹스 ‘플래시(flash)’ 시즌1 ~6회를 보고..



한국은 마블의 나라로 유명하지만 나는 적어도 드라마에선 마블보다는 DC코믹스가 맞는 것 같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마블 드라마는 뭔가 아쉬움이 있었는데 DC코믹스 드라마인 플래시를 보니까 마블 드라마에서 느꼈던 아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DC코믹스 라고 다 좋은 건 아니고 애로우나 넷플릭스에 올라온 다른 DC코믹스 드라마는 잘 안 봐지는데 딱 플래시 하나만 잘 봐진다. 내가 생각하는 히어로물의 모든 조건을 충족해서가 아닌가 싶다

일단 주인공이 찌질해야 하고 정체를 숨기고 활동해야 하고 연애가 잘 안 풀려야 하고 초능력의 기원이 적당히 말이 되는 동시에 약점이 있어야 하고 전지전능해선 안 되지만 아예 일반인이어선 안 되고 등등.. 스파이더맨처럼 특수 장비를 이용하는 초능력은 내 취향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슈퍼맨은 너무 전지전능해서 배트맨은 장비 빨이 심해서 별로다. 메타휴먼 설정도 매력적이다. 간혹 말이 안 되는 메타휴먼도 있지만 다음 회에 등장할 메타휴먼에 대한 기대감이 끊이질 않는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얽힌 어릴 적의 트라우마도 중심을 잘 잡고 있다. 현재 시즌6까지 나왔는데 잘 하면 완주 가능할 것 같다.

2020년 3월 26일 목요일

BBC America의 ‘킬링 이브(killing eve)’ 시즌1, 2를 보고..



끝내준다. 영국의 첩보원이 킬러 오타쿠인데 자신이 오랜 시간 추적해온 킬러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고 찐한 우정 또는 금기된 사랑 비스무리한 관계로 발전한다는 이야기이다. 비주얼, 음악, 액션 등등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지만 무엇보다 캐스팅이 예술이다

첩보원 역의 산드라 오야 두 말 할 필요 없고 킬러 역의 조디 코머가 압권이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배우가 나타났는지 신기할 정도로 킬러 역을 창조적으로 소화해냈다. 피오나 쇼우도 마찬가지. 드라마와 영화의 위상이 엎치락뒤치락 된 지 오래지만 이런 걸 보면 요즘엔 드라마가 이긴 것 같다. 요 몇 년 간 킬러와 첩보원이 나오는 영화 중 이보다 세련되고 쿨하고 흥미진진한 게 있었던가? 아마 10년 전이었음 킬링 이브는 드라마가 아니라 두 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 드라마 자체도 시즌당 8부작으로 긴 편이 아니고 원작 소설 자체도 이야기 거리로 봐선 미니 시리즈에 적합하다고는 볼 수 없어 어쩜 영화가 정답이었을 수도 있다

다 좋은데 아쉬운 건 시즌21에 비해 밀도가 떨어지는 편이고 막판엔 킬러A를 잡기 위해 킬러B의 도움을 받는다는 클리쉐까지 동원될 정도로 이야기가 꾸역꾸역 억지로 진행되는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두 번 우린 티백 같다고나 할까? 시즌3이 나온다는데 시즌1의 임팩트를 능가할 순 없을 것 같다. 원작 소설도 봤는데 드라마가 낫다.


2020년 3월 16일 월요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시즌2를 보고..



끝내준다! 속편이 전편보다 낫기가 힘든데 킹덤은 시즌2가 시즌1보다 낫다. 정말 훌륭한 쇼였다. 넷플릭스에서 만들어서인지는 몰라도 한국은 물론이고 월드 클라스급으로 훌륭하다. 액션, 이야기, 스펙타클 등등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시즌21화만 시즌1의 김성훈 감독이 연출했고 나머지는 박인제 감독이 연출했던데 도대체 뭐하시던 분이신지 궁금해서 감독의 필모를 찾아보고 다음 작품을 기대할 정도의 훌륭함이었다. 다만 예전부터 갖고 있던 좀비물에 대한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은 건 조금 아쉬웠다. 비단 킹덤 뿐 아니라 모든 좀비물에 해당되는 얘긴데 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좀비들이 살아있는 인간을 한 입만 깨물어 먹고 마는 게 아니고 떼거리로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뜯어 먹던데 그 정도면 살점이 남아나지 않아야 정상 아닌가? 항상 보면 좀비들에게 습격을 당한 인간은 얼마 뒤엔 몸 전체를 통틀어 한 두 입 정도만 뜯어 먹힌 상태로 좀비가 되어 돌아다닌다. 좀비들의 기세로 보아선 살점이 남아났을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 살점 다 뜯어먹고 뼈다귀만 남으면 당연히 전염도 불가능하다. 근육 없이 뼈다귀만 허우적대며 돌아다닐 순 없기 때문이다. 좀비물을 볼 때마다 이 부분이 납득이 안 되어 몰입이 어렵다. 세상에서 나만 이런 생각하는 것도 아닐 텐데.. 아닌가? 나만 불편한가?

2020년 3월 8일 일요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얼터드 카본(altered carbon)' 시즌1을 보고..



훌륭하다. SF지만 개념적으로 얄팍하거나 허술한 구석이 없고 이야기적으로도 탁월해 즐길 구석이 차고 넘친다. 비주얼은 이런저런 재탕이 많긴 했다만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저장소라는 장치 덕분에 육체를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고 정기적인 원격 백업 기능으로 불미스러운 사고 등으로 사망해도 라스트 업데이트 상태로 부활 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클론을 이용하면 자신을 여러 명으로 만들 수도 있다. 여기서 핵심은 저장소라는 장치인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 지에 대해선 먼 미래에 그냥 그런 게 있더라는 식으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넘어갔지만 나머지 설정들은 지금도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걸로 알고 있어서 마냥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중 육체 문제도 그냥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걸로 깔끔하게 짚고 넘어갔다. 느와르 장르로서의 매력이 충만하고 무엇보다 이야기 자체가 매우 정교하게 잘 설계되어있다.

다만 시간적 배경이 행성 간 여행이 가능한 지금으로부터 최소 몇 백 년 뒤의 먼 미래인데 매춘 시장은 현재와 근본적으로는 별 반 차이가 없어 볼 때마다 우스꽝스러웠다. 설마 그때까지 지금과 같은 형태의 매춘 업계가 존재할까? 엔딩에 밝혀지는 최상류층들이 저지르는 천인공노할 끔찍한 악행도 마찬가지다. 첨단 과학 기술이 발달한 그 먼 미래에 고작 그딴 짓을 저지르려고 그 엄청나고 어마어마한 장치들을 만들진 않을 것 같다. 

금발 백인 여자의 고공 추락 씬에서 1987년 개봉작 ‘리쎌웨폰’의 오프닝이 연상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가가 65년생 백인 남자이고 원작 소설은 2002년에 나왔다. 여러모로 아재스러운(개인적으론 정겨웠다) 구석이 있긴 하지만 할리우드 이야기 산업의 최첨단을 구경한 기분이다.

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를 읽고..

돈키호테 같은 캐릭터가 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에 힘 없는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편이지만 보통은 윗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아 한 군데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 ‘나의 돈키호테’의 돈 아저씨가 딱 그런 캐릭터다. 대학 땐 학생 운동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