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 월요일

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를 읽고..




돈키호테 같은 캐릭터가 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에 힘 없는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편이지만 보통은 윗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아 한 군데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 ‘나의 돈키호테’의 돈 아저씨가 딱 그런 캐릭터다. 대학 땐 학생 운동을 했고 입시 학원과 출판사를 거쳐 영화판에서 시나리오를 쓰다 지쳐 고향으로 내려가 비디오 가게 창업이라는 인생 노선도 디테일이 조금씩 다르지만 매우 익숙하다. 

꼭 내가 아는 사람 몇 명을 합쳐 놓은 캐릭터 같다. 몸 담은 곳마다 처음엔 능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하지만 결국엔 불화를 겪고 때려치우는 엔딩도 마찬가지. 예외는 없다. 아니 예외는 없는 줄 알았다.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살려면 불의에 동참하고 힘 없는 사람보다는 힘 있는 윗 사람과 잘 지내야 되는 줄 알았다. 돈 아저씨 같은 캐릭터는 영원히 세상과 불화를 겪다가 쓸쓸한 엔딩을 맞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살다보니 예외가 있더라. 돈 아저씨처럼 제주도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소설도 쓰면서 행복한 노후를 즐기는 엔딩이 꼭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판타지는 아닌 것이다. 매우 드물긴 하지만.

당장 ‘불편한 편의점’만 해도 그렇다. 내가 2013년에 ‘망원동 브라더스’를 읽고 리뷰를 작성했을 때만 해도 김호연 작가가 10년 뒤에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현재 스코어 150만부 판매를 돌파하는 역대급 베스트 셀러 작가로 거듭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소설가로 롱런 하려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이른바 ‘문단’이란 곳에 소속되어야 되는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고서도 소설가로 롱런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산 증인이기도 하다. 가장 놀라운 건 한국 뿐 아니라 일본, 미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23개국에 수출됐고 대만에선 10만부 판매를 돌파하며 번역문학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한국 소설이 있었던가?

책을 다 읽고 나자 지금까지 만난 돈키호테들이 떠올랐다. 대부분은 연락 두절이고 이제는 건너 건너 근황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어릴 땐 주변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희귀해지더니 이제는 멸종 수준이다. 하지만 굳이 연락은 하고 싶지 않은 와중에 그 돈키호테들과 유독 불화를 겪던 이른바 ‘윗 사람들’도 떠올랐는데 그들도 영원히 잘 먹고 잘 살진 않더라.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극 중에서 돈 아저씨가 몸 담았던 영화판을 놓고 보자면 코로나 시작과 동시에 대부분 망했고 돈 아저씨를 찾아 헤매는 솔이 몸 담았던 상암 역시 마찬가지. 사람 일 모른다.



2024년 5월 5일 일요일

'절대 BL이 되는 세계 VS 절대 BL이 되고 싶지않은 남자' 시즌1-2 👍




자신이 BL만화 속 등장인물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모브 캐릭터 주인공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메인 캐릭터가 되지 않으려 고군분투한다. 주인공에게 느닷없이 꽃미남이 접근하고 연애 플래그가 설 조짐이 보이면 그걸 회피하려 애쓴다의 반복이 이야기의 전부지만 자신이 BL 만화 속 등장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설정이 참신하고 이연희 닮은 여장남자로 유명한 이데가미 바쿠가 잠깐 나와서 신기했다. 그냥 예쁘장한 일반인인줄 알았는데 연기도 제법 해서 놀랐다. 다양한 BL 클리쉐 비틀기가 유쾌했고 일본에선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미남으로 여기는지 짐작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시즌3에선 과연 B가 L하는 운명을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p.s. 이데가미 바쿠

2023년 11월 20일 월요일

디즈니+ 영화 '출구는 없다(no exit)'를 보고..





디즈니+ 스릴러 영화. 재활 센터에서 도망 나온 주인공이 폭설로 인해 고속도로가 폐쇄되자 휴게소로 피난을 왔는데 주차장 미니밴 안에 밧줄로 묶여있는 소녀를 발견하고 구해주려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한 장소 이야기. 아군인줄 알았는데 적군이고 훈남인줄 알았는데 악당이고 악당인줄 알았는데 찐따였고 믿었던 경찰은 허당이고 등등 등장인물들의 실체가 들통날 때마다 흥미진진 소름이 돋는다. 깔끔하고 영리하게 잘 만들었고 원작 소설도 궁금하다.


2023년 11월 12일 일요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데이비드 핀처의 '더 킬러(the killer)'를 보고..


#더킬러 👍 순전히 본인의 실수로 요인 암살에 실패한 살인 청부업자가 그로 인한 페널티를 거부하고 복수에 나선다. 이런류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드는 데이비드 핀처라는 감독의 이름값에 걸맞는 걸작이라거나 시대에 화두를 던지는 문제작 같은 건 아니고 넷플릭스의 아낌 없는 지원 속에 적당히 힘 빼고 만든 듯한 웰메이드 소품. 특히나 디테일과 로케이션이 예술이지만 막판에 잠깐 출연한 틸다 스윈턴은 실망스러웠다. 죽음을 앞두고 잔뜩 폼 잡고 내뱉은 농담이 한국에서 88년도에 유행했던 저속한 아재 개그랑 똑같아서 어이가 없었다.

2023년 11월 10일 금요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귀무자'를 보고..

 


#귀무자 👍👍 끝내준다. 미이케 다카시 총감독 게임 원작 애니메이션. 미야모도 무사시가 귀신의 힘을 빌려 괴물들을 물리치는 이야기. 일본 드라마와 영화는 특유의 갈라파고스러움으로 인한 오글거림이 있지만 게임과 애니는 다르다. 특히 애니는 안 그래도 고퀄인데 넷플릭스 덕분에 날개를 단 격. 미야모토 무사시와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죽었다가 환마에 의해 부활한 인간들이 빌런으로 차례로 등장하는데 끝판왕이 사사키 코지로다.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최악의 악'을 보고..



#최악의악 1-3화 👍 1990년대, --일 마약 거래의 중심 강남 연합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충청도 경찰이 언더커버로 조직에 잠입한다. 목적지를 뻔히 알고 보는 언더커버물이라 어떻게 가는 지가 관건인데 '아내이자 아는 누나'와의 동행이라는 점과 강남 출신들로 구성된 조폭 설정이 참신하다.
 
#최악의악 4-9화 👍👍 그냥 흔한 느와르물이 아니다. 경찰 부부가 함께 때론 따로 언더커버 작전을 수행하다 보니 액션에 멜로에 브로맨스에 코미디까지 섞이며 톤앤매너가 깊고 풍성해졌다. 한중일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12화로 마무리하기엔 벅찬 느낌이 있고 특정 씬에선 더 가려다 만 듯해 감질났다.
 
#최악의악 10-12화 👍👍 마무리가 끝내준다. 관계들이 점점 꼬이고 수사의 스케일이 커져서 과연 수습 가능할지 궁금했는데 딱 깔끔했고 시즌2까지 기다리게 만들었다. 일단락은 됐지만 계속 궁금하다. 부부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올해 최고의 데뷔였던 비비는 앞으로 뭐 먹고 살지 등등.


2023년 11월 8일 수요일

김호연 작가의 '고스트 라이터즈'를 읽고..




얼마 문단 아이돌론 감명 깊게 읽고 문득 요즘 한국 소설은 어떤지 궁금해져서 새로 나온 소설 있나 찾아보다 김호연 작가의 신작이 벌써 나왔길래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있는 신기해서 읽어 보았다. 김호연 작가의 데뷔작망원동 브라더스 출간일이 2013, ‘연적 2015, ‘고스트라이터즈 2017년이니 집필 속도가 거의 더글라스 케네디급이다. 조금만 분발하면 역전할 있겠다. 사실 정도면 어지간한 한국 중장년층의 독서 속도보다 빠르다고 해도 같다. 아마도 작가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어서 그런 같은데 실제로 책도 마치 극장에서 영화 보듯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잔치국수 먹듯 후르륵 뚝딱 읽힌다. 이번 작품도 읽는데 대충 시간 정도 걸린 같다.
 
데뷔작망원동 브라더스 주인공은 만화가, ‘연적 시나리오 작가여서 한국에서 마이너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있어 좋았는데고스트라이터즈 주인공은 소설가여서 거기에 더해 한국 문단에 대해 갖고 있던 궁금증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이번엔 문학상이라고 같은 문학상이 아니라는 알게 되었다. 물론 듣보잡 문학상까지 똑같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극중에세종 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문학상조차 메이저가 아니라고 쳐주는 줄은 몰랐다. 설상가상 일명문단의 카르텔 간택 받지 못한다면 정통 신춘문예 등단 작가조차 원고 청탁이 없고 단행본 계약도 같이 해주는 신춘 고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쳐주는 문학상 출신주인공은신춘 고아 선배의 소개로 어느 웹소설 작가의 대필 작가 고스트라이터가 건데 덕분에 웹소설 시장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소설만 봐선 정통 한국 문단보다 웹소설 시장이 훨씬 건전하고 바람직해 보였다. 카르텔이고 뭐고 필요 없고 조회 수만 높으면 부귀영화를 누릴 있는 것이다. 타인의 운명을 설계하는당신은 내가 대로 살게 된다 판타지적 설정은 이해되지 않았지만 (스포주의) 주인공의 동료 고스트라이터이자 마이너 작가 성미은이 고군분투 끝에 웹소설 써서 대박이 그간 자신을 함부로 대했던 이들을 무시하고 자신을 존중해 주는 사람들과만 축배를 나누는 부분은 정말 통쾌하고 감동적이었다. 힘들고 어렵던 시절에 함께 연대하던 작가와 굳이 연락을 주고받진 않았지만 훗날 작품으로 소통하며 서로를 응원한다는 엔딩도 멋있었다. 알고 보니 무시한 아니었던 것이다.
 
장의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쓰여 있는 글쓰기 관련 멘트들이 정말 주옥같은데 이대로만 쓰면 훌륭한 작가가 있을 같은 기분이 든다. 중에선 10장의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글을 쓴다 가장 느낌 있다. 소설 자체도 그런 면이 있지만 작가 지망생들에겐 최고의 힐링 멘트 같다. 그런데 너무 조금씩 쓰는 문제가 있다. 작년 초쯤 멘트를 읽고 자극받아서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너무 조금씩 써서인지 도무지 진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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