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랑 종교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지만 적어도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이에선 정치 이야기는 종종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정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던 사이에서 처음으로 정치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이 사람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어 당황스럽거나 역시나 이 사람은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거나 둘 중 하나인데 엊그제 만난 아무개는 전자였다.
새로 구상 중인 작품의 빌런을 흘러간 정권의 누군가를 모델로 구상 중이라길래 나는 별 생각 없이 이젠 시대가 바뀌었고 지금부터 작품 준비를 시작하는 거라면 그 작품이 빛을 보는 건 최소 3년 뒤가 될 테니까 그 작품에서의 빌런이라면 오래 전에 지나가버린 정권의 누군가보다는 상대적으로 지나가버린 지 얼마 안 되는 정권의 누군가가 낫지 않겠냐고 아이디어를 던졌는데 내 이야기를 듣던 아무개의 표정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이 사람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어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더하기 배신감? 그러면서 왜 그 놈들이 진정한 빌런인지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며 무미건조했던 자리가 뜨겁게 달아올랐고 서로의 당황스러움이 진정될 때쯤 어색하게 자리가 마무리됐다.
예전에도 친하다고 생각하던 또 다른 아무개와의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정치 이야기가 나왔다가 한동안 안 보게 된 적이 있는데 어째 이번에도 비슷할 것 같다. 그래도 우리 사이가 정치 이야기 따위에 좌지우지 되어선 안 된다는 안타까움에 어떻게든 각자의 성장 배경까지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시켜 보려고 노력했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당황스러움은 더욱 커져만 갔던 기억이 난다. 참 똘똘한 녀석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