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3일 수요일

tvN 오리지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1, 2회를 보고..



훌륭하다. 이런 한드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 나물에 그 밥과도 같은 한드들의 틈바구니에서 피어난 한 떨기 야생화를 보는 기분이다. 김혜자, 고두심, 차승원, 이병헌, 신민아, 김우빈, 한지민 등등 탑스타들이 총출동했길래 마치 야구 올스타전 볼 때 정작 승부에는 별 관심이 안 가듯 이 드라마도 재미보다는 탑스타들을 한 화면에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미가 넘쳐난다. 한국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본 게 채 5년이 안 돼서 잘은 모르겠지만 이 정도 레벨의 탑스타들이 총출동했고 옴니버스인데도 재밌는 한드는 역사상 처음이 아닌가 싶다.

아 배경이 제주도라는 점도 시큰둥했었다. 한동안 제주도 붐에 기댄 이벤트성 기획 영화나 드라마들이 많았는데 하나 같이 별 볼 일 없었기 때문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배경이 제주도여야 할 이유도 딱히 없다. 그런데 우리들의 블루스는 다르다. 제주도가 배경이니 별 볼 일 없을 거라는 선입견도 보기 좋게 깨뜨렸다. 이 이야기라면 제주도가 배경이어야 마땅하다. 1화에서 차승원과 이정원의 학창 시절이 잊히질 않고 2화에서 차승원의 가족의 운명을 건 베팅에 구구절절 감정이 이입된다. 3화가 너무너무 궁금하다. ‘스물 다섯 스물 하나이후 당분간 이를 능가할 청춘 드라마는 없을 줄 알았는데 우리들의 블루스가 청춘 드라마도 아니면서 1화만에 스물 다섯 스물 하나를 뛰어넘어버렸다. 노희경 최고!


HBO 오리지널 드라마 '크래싱(crashing)' 시즌1,2,3을 보고..



스탠드업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프랑스 드라마 스탠딩업을 재밌게 본 후 웨이브에도 스탠드업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있어서 봤는데 훨씬 재밌었다.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느끼는 건데 역시 대중문화는 그중에서도 특히 드라마와 영화는 미국이 짱이다. K드라마가 뜨고 있고 일드는 확실히 이긴 것 같지만 미드에 비하면 아직 한참 멀었다. 암튼 이 드라마는 오프닝부터 강렬하다. 주인공이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보수적인 기독교 집 안에서 자란 스탠드업 코미디언 지망생이다. 첫사랑과 결혼 후 십여 년 넘는 세월 동안 스탠드업 코미디언 지망생으로 살고 있는데 설상가상 밤일도 별로여서 아내는 그런 남편을 참다못해 동료 미술 교사와 바람이 난 것이다.

주인공은 현장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고는 집에서 나와 동료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의 집을 전전하며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인데 미국 스탠드업 업계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고 캐릭터들이 압권이다. 특히 주인공 아내와 바람이 난 미술 교사 캐릭터가 유쾌한데 본인도 유부남이면서 주인공의 아내와 바람은 주인공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결국 친구가 된다. 안 웃기는 캐릭터가 없고 알고 보면 다들 짠하다. 실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는 피트 홈즈가 각본과 주연을 맡아서인지 에피소드들의 리얼리티가 범상치 않고 제작은 한때 화장실 코미디로 코미디 영화 장르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주드 아패토우다. 시즌3까지 다 봤는데 다음 시즌도 나와주면 좋겠다.

2022년 4월 12일 화요일

M. 나이트 샤말란의 '올드(old)'를 보고..



어느 호화로운 리조트가 있는 아름다운 섬에는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해변이 있다. 1시간에 2년이 흐른다. 설상가상 이 해변에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 없다. 꼼짝없이 갇힌 채 늙어 죽어야 한다. 리조트 측의 음모로 인해 해변에 갇힌 관광객들이 자신들의 노화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절망하다 죽어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꼭 이 영화가 아니어도 현실 세계에서 비슷한 일을 겪고 있기에 그렇게까지 공포스럽진 않았다.

현실이 더 오싹하다. 당장 내가 처음 앤잇굿이란 이름의 블로그를 시작한 게 2007년인데 지금이 2022년 하고도 4월이다. 15일이 아니라 15년 전이다. 일 년에 서너 번 만나는 내 또래의 지인들을 볼 때도 세월이 정말 빠르다는 걸 절감한다. 가끔 만나는 사이일수록 그 사이에 업데이트된 노화 포인트가 더 잘 캐치된다. 이젠 뭘 입었건 발랐건 썼건 그냥 찐 중년으로 보인다. 스냅백 써도 소용없다. 예전부터 쭉 보아온 배우들의 간만의 복귀작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관리를 잘했다 하더라도 노화가 숨겨지지 않는다. 간혹 3,40대 배우가 고등학생 역할을 맡는 경우엔 교실 씬에서 진짜 10대 배우들과 나란히 앉아 있을 때가 있는데 딱 꼬집어서 어디가 어떻게 다르다고는 말못하겠는데 피부의 경화나 처짐이나 탄력이나 자세나 걸음걸이 등등이 그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냥 관리 열심히 하고 있는 중년일 뿐

이 영화에선 중년이 된 어린 남매가 늙어 죽기 전에 극적으로 해변을 탈출해 초고속 노화의 저주에서 벗어나지만 현실에선 그럴 수도 없다. 늘씬 탱탱했던 배우들의 허벅지가 새다리처럼 가늘어져 후들거리는 장면이 잊히질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하체운동 열심히 해야겠다.


2022년 4월 9일 토요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일본 애니메이션 ‘신 테르마이 로마이(テルマエ・ロマエ)’를 보고..



원작 만화가 있고 2013인가에 영화로도 나왔는데 나는 봤다. 영화와 이번 애니가 같은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만 로마 시대 목욕탕 건축가가 목욕을 하다가 현대의 일본 목욕탕으로 타임슬립하는 이야기라는 정도만 알고 신박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보니 로마인이 일본의 최신 목욕탕을 보고 감동받아 다시 로마 시대로 돌아간 일본 목욕탕을 벤치마킹해 로마 목욕탕을 발전시킨다는 패턴이 매화 반복되는 지루해 3 정도까지 밖에 봤다. 하지만 매화 막판에 에필로그처럼 첨부된 원작 만화가의 일본 온천 여행기가 재밌었다

일본에는 봤지만 정작 온천에는 번도 가봐서 언젠가 코로나가 끝나면 온천 여행을 가보려고 생각 중이었고 유튜브에서도 틈만 나면 일본 온천 여행기를 찾아 보는 편이었는데 테르마이 로마이 애니메이션에서 15 연속 1등을 차지했다는 군마 온천 내부를 구경하게 줄이야! 한국 유튜버의 여행 채널에 일본 온천 여행기는 수도 없이 많지만 정작 온천 내부는 촬영이 불가여서인지 구경할 없어 아쉬웠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내가 원하던 영상이 것이다. 애니보다는 원작 만화가의 일본 온천 여행기가 만하다. 






2022년 4월 8일 금요일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일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를 보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여자 없는 남자들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분명히 기억 나는 건 주인공의 운전기사인 미사키의 운전 실력에 대한 묘사다.

홋카이도 출신이라 어릴 적부터 눈길 운전에 단련되어 운전을 잘하게 됐다는 설정인데 하루키가 워낙에 묘사를 잘해서 글로만 읽는데도 미사키의 운전 실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도 미사키의 뛰어난 운전 실력이 어떻게 영상화됐을까였다. 순전히 미사키의 운전 실력을 감상하고 싶어서 본 건데 딱히 미사키가 운전을 잘하는 것 같지 않아서 실망했다. ‘분노의 질주제이슨 본이나 라이언 고슬링의 드라이브에 나올 법한 자동차 추격 씬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 무미건조했다(딱 일본영화스러웠다). 딴짓 안 하고 안전하게 운전하는 스타일이구나 정도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운전 잘하는 걸 영상에 담는 건 어려운 도전 같긴 하다. 실제로 남의 차를 탔을 때 기사가 운전을 잘한다고 느낀 적이 딱 한 번 있다. 40대 후반쯤으로 추정되는 택시 기사님이었는데 진짜 막히는 도로였음에도 물 흐르듯 부드럽게 무리하지 않고 앞 차들을 추월하면서 그 흔한 급제동 한번 없는 거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 날 택시 뒷좌석에서 별생각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기사님의 운전 실력이 범상치 않음에 놀라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내려놓고 기사님의 운전 실력을 감상했던 기억이 났다.


2022년 4월 6일 수요일

5월부턴 슬슬 극장이 살아날 걸로 기대된다



5월부턴 슬슬 극장이 살아날 걸로 기대된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만큼은 아니어도 작년과 재작년 같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이 계속 집에만 있을 순 없는 법이다. 날도 더운데 주말 나들이엔 극장만큼 시원한 가성비 공간이 없고 결정적으로 극장 킬러인 줄 알았던 OTT에 볼만한 콘텐츠가 바닥났기 때문이다. 예전엔 몰랐는데 지난 몇 년간 넷플릭스 같은 메이저 OTT에서 왓챠까지 다양한 OTT를 경험해보니 콘텐츠가 많다고 볼만한 콘텐츠도 많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는데 볼만한 콘텐츠라는 건 일단 신작이어야 하고 어느 정도는 이슈가 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작품이 흔치 않으니 점점 뭘 볼지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볼만한 작품은 1분기에 한 편 나올까 말까라는 건데 이 정도 빈도라면 사양산업 카테고리에 들어가기 직전인 극장도 충분히 비벼볼 만 하다. 100여편이 넘는 신작들이 창고에 쌓여 있다는 점도 기대 요소인데 더 묵혔다간 신작 개봉이 아니라 뒷마당에 묻어둔 타임캡슐을 발굴하는 느낌이 날 테니 슬슬 개봉을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5월 극장가엔 탑건이 있다. 예고편만 봐도 대박 예감이다.

탑건이라면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가 충분하고 범죄도시2’도 있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문나이트(Moon Knight)’ 1화를 보고..

 

이집트 슈퍼 히어로는 처음인데 생각해 보니 이집트에는 고대의 신화 속 신들이 많으므로 슈퍼 히어로 이야기의 배경으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겠다. 주인공은 런던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의 기프트샵 직원 스티븐이다. 박물관 가이드가 꿈이지만 아직 이루지 못했고 여자 동료가 데이트 신청을 하지만 히어로물의 주인공답게 그게 데이트 신청인지 아닌지조차 눈치 채지 못하는 어리숙한 성격에 마마보이다.
 
몽유병이 있고 툭하면 필름이 끊겼다가 낯선 곳에서 정신을 차리는데 이번엔 스케일이 크다.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 보니 알프스 들판이다. 낯선 이들이 공격해와 도망치다 마을에서 아서 해로우를 만난다. 그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 같은 느낌이고 스티븐이 갖고 있는 지도 몰랐던 황금 딱정벌레 장신구를 요구한다. 스티븐은 별 생각 없이 넘겨 주려하지만 그의 안의 목소리는 절대 주지 말라며 아서 해로우 일당을 공격하며 폭주하기 시작한다. 스티븐은 그 와중에 또 다시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뜨는데 이번엔 자신의 침실이다. 이 모든 게 꿈이었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방 안의 가구들이 이전과 달라진 걸 눈치챈다.
 
벽 안에서 못 보던 핸드폰을 발견하고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스티븐을 마크라 부르며 걱정해준다. 영문을 모르겠어서 혼란에 빠진 스티븐은 집을 나와 불이 꺼진 박물관으로 도망가는데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 화장실로 도망간다. 화장실 문이 부숴지기 일보 직전이다. 스티븐 안의 또 다른 인격은 몸을 넘겨주면 괴물로부터 구해주겠다고 하고 스티븐이 고심 끝에 허락하자 스티븐은 문나이트로 변신해 화장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박물관 괴물을 때려죽이며 1화가 끝난다. 이집트 슈퍼 히어로라는 점이 참신했고 기존의 마블 영화들과는 다른 어둡고 현실적인 톤이 좋았다. 총 6부작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를 읽고..

돈키호테 같은 캐릭터가 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에 힘 없는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편이지만 보통은 윗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아 한 군데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 ‘나의 돈키호테’의 돈 아저씨가 딱 그런 캐릭터다. 대학 땐 학생 운동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