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2일 화요일

M. 나이트 샤말란의 '올드(old)'를 보고..



어느 호화로운 리조트가 있는 아름다운 섬에는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해변이 있다. 1시간에 2년이 흐른다. 설상가상 이 해변에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 없다. 꼼짝없이 갇힌 채 늙어 죽어야 한다. 리조트 측의 음모로 인해 해변에 갇힌 관광객들이 자신들의 노화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절망하다 죽어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꼭 이 영화가 아니어도 현실 세계에서 비슷한 일을 겪고 있기에 그렇게까지 공포스럽진 않았다.

현실이 더 오싹하다. 당장 내가 처음 앤잇굿이란 이름의 블로그를 시작한 게 2007년인데 지금이 2022년 하고도 4월이다. 15일이 아니라 15년 전이다. 일 년에 서너 번 만나는 내 또래의 지인들을 볼 때도 세월이 정말 빠르다는 걸 절감한다. 가끔 만나는 사이일수록 그 사이에 업데이트된 노화 포인트가 더 잘 캐치된다. 이젠 뭘 입었건 발랐건 썼건 그냥 찐 중년으로 보인다. 스냅백 써도 소용없다. 예전부터 쭉 보아온 배우들의 간만의 복귀작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관리를 잘했다 하더라도 노화가 숨겨지지 않는다. 간혹 3,40대 배우가 고등학생 역할을 맡는 경우엔 교실 씬에서 진짜 10대 배우들과 나란히 앉아 있을 때가 있는데 딱 꼬집어서 어디가 어떻게 다르다고는 말못하겠는데 피부의 경화나 처짐이나 탄력이나 자세나 걸음걸이 등등이 그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냥 관리 열심히 하고 있는 중년일 뿐

이 영화에선 중년이 된 어린 남매가 늙어 죽기 전에 극적으로 해변을 탈출해 초고속 노화의 저주에서 벗어나지만 현실에선 그럴 수도 없다. 늘씬 탱탱했던 배우들의 허벅지가 새다리처럼 가늘어져 후들거리는 장면이 잊히질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하체운동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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