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작가의 '연적'을 읽고..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나는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 편이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나보다 많이 읽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알라딘, 교보문고 플래티넘 회원임은 물론이고 동네 도서관에도 2주마다 들러 내 돈 주고는 절대로 안 살 것 같은 책들 위주로 한도 꽉 채워서 빌려오곤 한다. 종목 안 가리고 한 달에 최소 열권은 읽는 것 같은데 유일하게 안 읽는 게 한국 소설이다. 안 읽는 게 아니라 못 읽는다. 이른 바 잘 쓴 문장이라는 것들이 나에겐 전혀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잘 쓴 문장이 뭔지도 모르겠고 그런 거 감상하려고 소설을 읽는 게 아니다. 한국의 문단 분위기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이대로라면 제2의 황석영이나 최인호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김호연 작가의 ‘연적’을 읽고는 ‘삼포 가는 길’과 ‘고래사냥’이 떠올랐다. 황석영과 최인호가 2015년 현재 30대라면 ‘연적’ 같은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삼포 가는 길’과 ‘고래사냥’이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로드무비라면 ‘연적’은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유골’의 로드무비라는 게 다를 뿐이다. 윗 세대의 남자들이 그녀를 끝까지 지켜준 것과는 달리 지금 세대 남자들은 무능력 하다는 그 어떤 은유 같은 걸까? 암튼 현재 한국 소설계에는 명맥이 끊긴 유형의 대중소설이라 더 반가웠고 개인적으로는 주요 등장인물 중에 영화계 종사자가 있어서 더 몰입해서 봤다만 이 부분은 어쩌면 양날의 칼일 수도 있겠다. 영화계 종사자 그 중에서도 시나리오 업계 쪽에 잠시라도 발을 담갔다가 험한 꼴을 겪었거나 현재 험한 꼴을 겪고 있는 중인 독자라면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구구절절 가슴을 치며 읽을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몰입도가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현직 시나리오 작가의 소설이어서인지 매 장마다 그림이 그려졌고 마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잔치국수 먹듯 후루룩 읽을 수 있었다. 워낙에 영화적인 소설이라 ‘삼포 가는 길’과 ‘고래사냥’처럼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극장에서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저 양날의 칼 부분을 어떻게 각색하느냐가 관건일 것 같다. 기대된다.
관련 포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