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5일 일요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I-랜드’를 보고..



눈을 떠 보니 무인도고 과거의 기억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과 똑같은 복장을 한 남녀가 7~8명 정도 있다. 그들도 과거의 기억이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왜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오직 생존 본능만이 그들 사이의 공통점이다. 무인도에 혈기왕성한 청춘남녀들이 모여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갈등이 생기고 살인사건도 벌어진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무인도의 풍광이 근사하고 남녀 배우들도 매력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주인공의 건강미가 예술이었다.

문제는 구성원들 간의 격투 끝에 머리를 맞고 정신을 잃은 여주인공이 정신을 차려보니 근 미래의 텍사스 교도소 안의 실험실이고 이 모든 난리가 사실은 ‘통속의 뇌’류의 거창한 실험이라는 것이다. ‘로스트’ + ‘매트릭스’라고나 할까? 너무 식상해서 김이 확 샜다. 알고 보니 무인도의 청춘남녀들은 모두 사형수고 개선의 가능성을 테스트 중인데 교도소장은 이 테스트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인위적으로 개입해서 방해를 하려 하고 어쩌구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후 전개 역시 대부분 뻔하고 식상했는데 그래도 볼 만 했던 건 캐릭터들의 과거 사연이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그중 텍사스 여자의 사연은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먹먹해진다.

모두들 과거의 기억이 하나 둘 씩 떠오르고 그 와중에 여주인공의 무죄가 밝혀지지만 해피엔딩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막판 반전의 한 방이 나쁘지 않았다.

2019년 9월 12일 목요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일드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를 보고..



과격하고 적나라한 제목과는 달리 오프닝은 소소하고 사랑스럽다. 지방에서 상경한 수수한 여대생이 같은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 남자 선배와 만나 사랑을 키워나간다. 이와이 순지의 ‘4월 이야기’의 드라마 버전 같은데 왜 저런 제목을? 의아했는데 답은 금방 나온다. 남자 선배의 그것이 정말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입학식 전에 만나 연애를 시작했는데 졸업하고 결혼할 때까지도 안 들어가고 결혼 후에도 안 들어간다. 이런 일이 실제로 가능한 건 지 궁금해서 시청을 중단하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자전적 에세이가 원작이라고 한다. 실화라는 걸 알고 보니 더 안타까웠다.

여자는 스스로를 하자 있는 불량품으로 여기는데 그런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남편에게 더 큰 사랑으로 보답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중 남편이 월급의 대부분을 여자를 사는데 탕진하는 매춘업소 단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여자는 화를 내기는커녕 자기가 남편에게 못해주는 걸 대신 해 주는 매춘업소 여자들에게 마음속으로 깊이 감사해하며 남편의 취미생활을 눈감아준다. 생불이 따로 없다. 그리고 드라마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공감 불가능의 영역으로 넘어가 버린다.

첫사랑인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남자 경험이 없는 줄 알았던 여자는 알고 보니 남편을 만나기 전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와 원나잇 경험이 있었고 남편이 매춘업소 단골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본인도 인터넷에서 아무 남자나 만나 몸을 제공하는데 놀랍게도 다른 남자들의 그것은 잘만 들어간다.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는 게 아니라 남편의 그것‘만’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여자는 인터넷에서 모르는 남자들을 만나 계속해서 몸을 제공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큰 상처를 받고는 집을 나가 버린다. 이후 여자는 친척 할머니의 장례식 참석 차 고향에 내려가는데 여자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시골이라 놀 거리가 없어 전교생이 모두 섹스로 얽혀 있었다는 걸 회상하고 돌아가신 친척 할머니는 마을 청년들의 성욕을 해결해주는 일을 담당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드라마의 분위기가 ‘4월 이야기’로 시작해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를 잠깐 찍고는 갑작스레 ‘도쿄 데카당스’로 빠지더니 급기야 ‘나라야마 부시코’로 마무리 되는가 했는데 막판엔 또 부부가 뜬금없이 화해하고는 아이를 낳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양가 부모까지 동원해 티격태격하다가 결국엔 우리 둘이서만 행복하게 살자고 다짐하며 마무리 된다. 역시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으로는 ‘남편의 그것만 들어가지 않아’가 드라마의 내용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2019년 9월 7일 토요일



에이전트 오브 쉴드시즌1 보기 시작했다. 디즈니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 마블 작품들이 넷플릭스에서 다 내려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 전까지 넷플릭스의 모든 마블 작품들을 클리어하는 게 목표다. 지금 구독중인 서비스들도 감당이 안 되는데 디즈니까지 구독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런지 모르겠다. 암튼 ..은 현재 2화까지 봤는데 극장판보다 볼 만 하다. 마블류 히어로물을 극장에서 볼 때마다 졸음이 밀려오고 이건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가 아닌가 한탄했는데 역시나 드라마에 더 어울렸던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하나도 안 졸렸고 은근히 흥미진진했는데 이 느낌대로라면 전 시즌 완주도 가능할 것 같다. 좀비물은 다 뻔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안 보고 있던 산타클라리타 다이어트도 속는 셈 치고 보기 시작했는데 1화는 재밌다. 시즌4가 캔슬 돼서 시즌3가 마지막이라니 분량도 딱 적당하다. 미드만 보면 허전해서 간만에 신규 업데이트된 일드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를 시작했는데 지난번에 완주한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에 이어 또 한 번 걸작 예감이다. 일본 특유의 병맛 코믹 일드일 줄 알고 봤는데 전혀 아니었고 깊고 묵직하고 진정성도 충만한 게 원작 소설이 있을 것 같아 검색해보니 역시나다. 다만 원작이 소설은 아니고 에세이인데 앞으로 이게 실화라는 걸 알고 봐야 하니 마음이 무거울 듯하다. 넷플릭스 일본 오리지널들이 전반적으로 대단하다. 아주 잘 하고 있다.



2019년 8월 18일 일요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인드헌터’ 시즌2를 보고.. (스포주의)


작년 이맘 때 쯤 시즌1을 논스톱으로 정주행 완주 후 1년을 기다렸고 엊그제 금요일에 시즌2가 업데이트 된 거 확인하자마자 주말 내내 밤잠을 줄여가며 정주행했고 방금 완주했다. 훌륭하다. 역시 데이빗 핀처 + 넷플릭스다. 시즌1에 이어 이번 시즌도 역대급 걸작이었다. 진짜 내가 이래서 넷플릭스를 못 끊는다. 넷플릭스는 ‘마인드헌터’를 탄생시킨 것만으로도 존재 이유가 충분하다. 다만 시즌1에 비해 일반적인 수사물에 가까워져 ‘마인트헌터’만의 독특함은 약해져서 아쉬웠지만 –‘조디악’의 드라마 버전이랄까?- 이 정도 웰메이드면 뭘 해도 용서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가 다음 시즌에도 수사물 쪽이라면 웬디 카 박사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을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사실상 이번 시즌에서 웬디 카는 조단역에 가까웠고 없어도 대세에 지장이 없는 수준이었다. 또 하나 아쉬웠던 건 BTK의 분량이다. 시즌1에서는 존재감만 어필했으니 이번 시즌에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존재감만 어필하더라. 그래도 검거되진 않았으니 시즌3을 기다릴 수 있어서 넘 행복하다.

2019년 8월 11일 일요일

넷플릭스로 '드림보트(Dream Boat)'를 보고..



다양한 콘셉트의 크루즈 여행 상품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직 게이만 탑승 할 수 있는 크루즈 여행 상품이 있는 줄은 몰랐다. 전 세계의 게이(대부분 크고 건장한 백인)이 크루즈 선에 모여 매일 밤마다 새로운 주제로 파티를 열고 섹시 댄스를 추고 새 친구를 사귀고 뽀뽀하고 키스하고 포옹하고 핥고 응응하고 다음 날 아침이면 쓰고 난 콘돔들이 텅 빈 갑판 위를 굴러다닌다. 파티를 즐기는 게이 승객들의 노출 수위가 심하게 적나라하다. 그들이 전문 배우는 아닐 텐데 아무리 분장을 찐하게 했다고 한들 촬영 허가를 어떻게 받았는지 궁금하다

역시 넷플릭스다. 넷플릭스가 아니었음 이런 다큐를 어디서 봤을지 모르겠다. 다큐는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화려한 파티 이면에 숨겨져 있는 승객 개개인의 정체성, 차별, 에이즈 등등의 다양한 고민들을 다루는데 뭐니 뭐니 해도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은 늙고 추해지는 게 싫고 외모로만 평가 받는 게 싫고 마지막으로 젊은 게이들이 따를 만한 늙은 게이의 롤 모델이 없다는 것 등이다. 알겠는데 동양 남자 시청자로선 크루즈 선에 동양 남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양 남자는 이 시장(?)에서도 인기가 없는 걸까?

2019년 8월 10일 토요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를 보고..




내가 볼 땐 넷플릭스의 아시아 진출의 진정한 수혜국은 일본이다. 현재 스코어까지만 봤을 때 한국 드라마 업계가 딱히 넷플릭스 덕을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당장 오리지널로 서비스 되고 있는 애니메이션만 봐도 수십 편이 넘는다. 얼마 전에 업로드 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비록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만 다루었지만)에 관한 다큐인 ‘Enter The Anime’만 봐도 넷플릭스에서 얼마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갈로파고스적인 매력이 넷플릭스라는 날개를 달고 훨훨 날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런데 일본 콘텐츠 업계의 에이스는 애니메이션 만이 아니다. 포르노다.

일본 영화는 존재감이 없고 드라마는 고인물이지만 애니메이션과 포르노는 다르다. 둘 다 일본 콘텐츠 업계의 원투펀치인 건 물론이고 세계 시장에서도 압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 디즈니의 대항마를 키워야 하는 넷플릭스로서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는 당연한 결론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더 나아가 포르노까지 끌어들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무라니시는 포르노 업계의 거장이라기 보다는 화제성으로 유명한 감독인데 그의 일대기를 드라마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역시 넷플릭스다. 

심지어 쓸데없이 고퀄이다. 탑스타와 훌륭한 여배우들이 총출동했고 노출과 베드씬도 아주 거리낌이 없다. 확실하진 않지만 실제 현역 포르노 배우까지 출연한 듯하다. 일본 포르노 업계의 자존심을 걸고 아주 작정하고 만들었다. 그리고 걸작이 탄생했다. 무라니시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루즈해지려는 중반쯤 구로키 역의 모리타 미사토가 영혼을 담은 인생 연기로 드라마를 살려냈다. 최근 몇 년간 본 일드 일영 통틀어 이 정도 상업성과 예술성을 갖춘 작품은 기억에 없다.

내가 이래서 넷플릭스를 못 끊는다.

2019년 8월 1일 목요일

죄인(the sinner) 시즌1



넷플릭스 오리지널 죄인시즌1. 이렇게 슬픈 이야기인 줄 몰랐다. 평범한 가정주부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벌건 대낮에 사람들이 다 보는 호숫가 공원에서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남자를 칼로 7번인가 찔러서 살해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에겐 정말 슬픈 사연이 있었다. 범인이 아니라 그녀의 범행 동기를 알아내는 게 이 드라마의 목적이고 범행 동기를 알아내려면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특정 기간의 과거를 밝혀야 하는데 이 추리 과정에 살짝 무리가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전반적으로 납득이 가는 훌륭한 추리였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진짜로 나쁜 놈인지를 생각해보면 딱히 답이 없다. 다들 이유가 있고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완전무결한 약점이 없는 드라마는 아니다. 여자의 기억이 마치 전자제품 켜고 끄듯 떠올랐다 망각된다. 인간의 기억이 그렇게 조건반사처럼 작동되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가장 납득이 안 되는 건 호숫가에서 벌어진 첫 살인 사건이다. 그 때 그 현장에서 들었던 음악과 똑같은 음악을 들었다고 조건반사처럼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죽이게 될 것 같진 않다.

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를 읽고..

돈키호테 같은 캐릭터가 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에 힘 없는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편이지만 보통은 윗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아 한 군데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 ‘나의 돈키호테’의 돈 아저씨가 딱 그런 캐릭터다. 대학 땐 학생 운동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