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일 수요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아카이브81(Archive81)’을 보고..



오컬트 장르의 최첨단이자 종합선물세트. 화면 속에서 귀신이 기어 나오는 건 ‘링’, 멀쩡해 보이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알고 보니 컬트 종교에 빠져있는 건 ‘로즈마리 베이비’, 고립된 공간에서 미쳐가는 남자 주인공은 ‘샤이닝’, 스너프 필름은 '무언의 목격자' 등등 걸작 호러 영화들이 들어있어 반갑다. 영상 복원이 직업인 주인공이 다루는 비디오 테잎, 필름, 카메라 등등의 디테일도 매력적이다. 막판엔 타임슬립까지 나온다. 

신기한 건 재밌을 만한 건 다 들어가 있는데도 지루하다는 거다. 영상 복원을 직업으로 하는 평범하고 지루한 남자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거대 기업 회장에게 아날로그 테잎을 디지털로 옮기는 작업을 의뢰받고 외딴 산 속의 고립된 저택으로 이동할 때까지는 흥미진진했다. 이제 저 멋있는 저택이 주인공을 어떻게 미치게 만들지가 궁금했는데 이야기가 좀 진행되겠다 싶을 때마다 복원 작업 중인 아날로그 테잎에 저장된 과거 이야기가 나와 흐름이 뚝뚝 끊겼다. 그냥 과거만 나오는 게 아니라 과거의 과거도 나온다. 영화 속 영화 같은 설정이나 블레어 위치 같은 페이크 다큐를 싫어하면 절대 못 견딘다. 대충 알겠으니까 스킵하고 싶어도 정확히 모르고 지나가면 엔딩을 즐길 수 없을 것 같아 그럴 수도 없다.

이를 악물고 중반부의 지루함을 견뎌내기만 한다면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엔딩을 즐길 수 있지만 어지간히 참을성이 강하거나 필름 매체에 대한 향수가 있지 않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새로울 건 하나도 없고 중반까진 1.5배속이 아니고선 견딜 수 없을 만큼 지루했지만 차별화된 디테일이 매력적이었고 어떻게든 끝까지 보게 만들었으며 엔딩에 여운까지 있었으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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