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드맨
- 2007/09/1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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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글수 : 10
월급이 들어왔다.
영화 투자 제작 배급사를 희망하지만 단 한번도 투자금을 회수한 적이 없는 회사에서 월급이 들어온다는 건 말 그대로 기적같은 일이다. 영화를 제작한 적이 없는 영화사에 다니는 기획팀 직원인 나는 월급을 주는 우리 대표가 그저 고맙구 미안할 뿐이다. 언젠가는 대박 아이템을 발굴 개발해 대표가 투자한 월급의 수백배에 달하는 수익으로 보답하고는 싶지만 영화판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내가 능력이 모자라 과연 그럴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오전에는 회사로 들어온 시나리오들을 검토한다기 보다는 대충 대충 읽어본다. 그러다 보면 점심 시간이 되고 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들어와 커피 마시고 잡담을 한다. 잡담이 지겨워지면 자리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뉴스를 뒤적이며 대박 아이템을 찾아 헤맨다. 별 아이템이 없다 싶으면 새로 출간된 일본 소설 검토를 시작한다. 이렇게 오후를 보내면 퇴근 시간이 되는데 회사 돈으로 저녁을 먹고 야근을 하던가 그냥 퇴근을 하는데 보통은 그냥 퇴근을 선택한다. 야근한다고 대박 아이템이 발굴되는 것도 아니고 야근까지 해가면서 할 일도 딱히 없으니 칼퇴근에 대한 미안함은 없어진지 오래다.
이렇게 입사 후 몇 달을 널럴하게 보내고 나니 이젠 슬슬 회사의 미래가 걱정이 된다. 대박 아이템 발굴이 쉬운 것도 아니고 그동안 투자한 작품 크랭크인 소식도 들리지 않고 투자한 작품 시나리오를 읽어봐도 이거 왜 투자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가 없다. 당연히 회사의 미래도 어둡게만 느껴진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을 신생 영화사에서 감독하라구 데려올 돈도 없고 울 대표가 설경구, 송강호, 최민식과 친하지도 않은 것 같다. 어둡다.
이 블로그를 우리 회사 사람들이 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회사 사람들이 이 블로그를 보고 내가 썼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바로 오리발을 내밀며 블로그는 폐쇄해 버려야겠지만 신생 영화사 기획실 직원이 한 두명도 아니고 블로그 설명에 절대 실화가 아니라고 써 두었으니 별 탈은 없겠지.
사실은 블로그를 접으려고 했다. 구글 애드센스로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블로그였는데 구글 애드센스에 대한 미련을 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나의 계정은 70달러 정도 되는데 100달러 달성은 요원해 보인다. 그냥 깨끗이 포기했다.
막상 블로그를 폐쇄하려니 문득 어차피 이 블로그에 개인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하고는 싶었으나 딱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많이 있어 앞으론 그런 이야기들이나 일기처럼 올리면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바꾸게 됐다.
회사 여직원들 대부분은 싸이월드에 거주하고 있고 나이 많은 직원들은 블로그에 별 관심이 없으며 대표의 인터넷 생활은 네이버와 야후 그리고 이메일 뿐이니 나의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내일은 투자금만 받아놓고 진행은 지지부진한 제작사 사람들과 회의가 있다.
캐스팅 어려운 거 뻔히 알고 더 이상의 시나리오 각색도 무의미한 상황이라 별로 할말도 없는데 투자금이 들어갔으니 내버려둘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회의는 해야 되는 분위기다. 아마 시나리오 각색 방향에 대한 얘기나 두서없이 떠들다 말 것이다.
계약금만 챙기고 떠난 A급 작가 아무개씨가 부러울 뿐이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이 블로그는 실화가 절대 아니다.
덧글
죄다 2007/09/12 22:51 # 답글
애드맨 2007/09/12 23:26 # 답글
Rick 2007/09/13 05:16 # 답글
사람들이 너무 획일된 시나리오, 가치만 요구하는 작품을 바래서
정말 원하는 영화 만들어진것을 못봣습니다..
그렇다고 노력안한다는 예기는 아닙니다.
세상은 자신이 요구하는대로 더 벽이 높아지게마련이죠
대박영화 만드는것도 좋지만, 그만큼 모두가 접할수있는 2000원영화 나왔으면하는 바랍니다.
그러면 꼭 시장경재만을 탓하지않아도 좋은영화 더많이 볼수있을태니까요..
참고로 전 만년 이러고 있습니다...가끔 개미눈물만한 보수가 들어오지만
한사람에 국한되어 돈벌어가고 있는게 아닌지 저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을 때도 많지요..
애드맨 2007/09/13 08:10 # 답글
키리에 2007/09/13 09:26 # 답글
어이쿠 2007/09/13 11:00 # 삭제 답글
애드맨 2007/09/13 22:29 # 답글
어이쿠// 다들 그런말은 해주는데 나간다고 별 수 없어서요.
netphobia 2007/09/14 19:23 # 답글
마에노 2008/06/20 14:09 # 답글
예전글부터 차근차근 읽어가고 있습니다.
사바세계 2008/12/22 20:07 #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