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5일 일요일

전건우 작가의 ‘고시원 기담’을 읽고..



맨날 넷플릭스만 보다보면 한국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조금 더 소소하고 한국적인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생기는데 한국 영화로는 그런 갈증이 해소되지 않은 지 오래고 한국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둘 다 소소함과는 거리가 멀고 간혹 나오는 소소한 이야기는 수준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주류 시장의 웰메이드 소소한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건데 이런 건 일본 소설이 잘 한다. 그래서 나와 같은 독자들은 줄창 일본 소설만 읽는데 문제는 슬슬 읽을거리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한국에서도 통할만한 일본 주류 시장의 웰메이드 소소한 이야기가 무한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 소설 전문가여서 잘 아는데 사실상 다 떨어진 것 같고 체감상 일본 소설의 베스트셀러 상위권 점유율도 많이 떨어졌다. 주인공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태생적인 한계도 있고..

한국 소설은 영화와 드라마와는 반대로 지나치게 소소하고 사적이기만 해서 문제(?)였는데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 같다. 이대로라면 다 죽는다고 나름 문제의식을 느낀 몇몇 뜻있는 출판사에서 장르 소설 시장을 개척하려고 두 팔 걷고 나선 것이다. 초창기엔 말만 장르 소설이지 순수문학 때가 묻은 불순한 소설이 대다수였는데 슬슬 읽을 만한 본격 장르 소설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고 ‘고시원 기담’도 그 중 하나다. 문득 공포 소설이 읽고 싶어져서 샀고 집에 오기 전 스타벅스에 들러 휘핑크림 잔뜩 올린 그린티프라푸치노 한 잔 마시면서 1장 격인 ‘303호: 그 남자, 어디로?’만 읽었는데 아직까진 훌륭하다.

이런 소설들을 응원하고픈 마음에 출판사 정보를 찾아보니 대표가 004년 영화 [실미도]로 제41회 대종상영화제 각색상을 수상했으며 영화 [공공의 적2] [한반도] [국화꽃 향기] 드라마 [썸데이] 에세이 <나이 듦에 대한 변명> <죽을 때까지 섹시하기> 등의 작품을 집필한 김희재 작가다. 말 그대로 한국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님이시고 이 정도 경력이면 지금도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쓰고 있으셔야 정상인데 어쩐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쓰다가 한국영화판이 흘러가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이렇게 오리지널 시나리오만 써서는 답이 없다고 판단하고 본격 장르 소설로 노선을 바꾼 것 같다. 잘 생각하신 듯.

2019년 5월 4일 토요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데드 투 미(dead to me)'를 보고..


시작이 좋다. 일단 캐스팅이 합격이다. 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와 린다 카델리니. 다른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종종 봐서 얼굴은 알지만 주연급이 아니라서 굳이 이름까지 찾아보진 않았는데 종류는 다르지만 둘 다 깊이감이 있고 신뢰가 가는 마스크다. 게다가 둘 다 연기가 되니까 크리스티나는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슬픔에 잠긴 부동산 중개인 같고 린다 카델리니 역시 마찬가지다. 전개도 놀라웠다. 초중반까지는 ‘그레이스 앤 프랭키’의 좀 더 어리고 진지한 버전이랄까?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픔에 잠긴 40대 초중반 백인 여자 두 명의 우정을 다룬 잔잔한 힐링물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중후반에 들어서자마자 소소한 반전으로 임팩트 있게 허를 찌르고는 바로 이어서 도저히 궁금해서 다음 화를 안 보고는 못 참겠는 떡밥 투척까지 아주 박진감이 넘친다. 이제 막 1화를 봤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시즌1을 완주하게 될 듯하다. ‘너의 심장’ 시즌1 완주 이후 딱히 보고픈 게 없어서 허전했는데 신난다.

2019년 5월 2일 목요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너의 심장(chambers)’을 보고..



미국 중남부의 어느 소도시에 사는 여고생이 심장마비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다른 여고생의 심장을 이식받고 살아났는데 그 여고생의 심장과 함께 영혼까지 몸속으로 따라 들어오는 바람에 환청이 들리고 헛것을 보는 등의 혼란을 겪는다. 알고 보니 그 여고생의 죽음에는 미스터리한 비밀이 있고 잠깐 잠깐 그 여고생의 영혼이 빙의될 때마다 얻은 힌트로 여고생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친다는 이야기다. 여러모로 새로울 건 없는 이야기인데 오컬트 장르의 익숙한 설정들을 아기자기하고 세련되게 잘 엮었고 촬영과 편집도 스타일리시했다. 엔딩도 괜찮았다. 시즌1을 깔끔하게 마무리함과 동시에 시즌2를 충분히 궁금하게 만들었다. 여러모로 괜찮았는데 가장 괜찮았던 건 주인공에게 심장을 주고 떠난 여고생의 집이었다. 황량한 벌판 한 복판에 위치해 있어 전망이 끝내주고 인테리어도 근사하고 천장도 높고 방과 거실 등의 공간이 큼직큼직해서 작은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데도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전반적으로 괜찮았는데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다뤘다는 점은 참신했지만 그들이 너무 신비롭게 묘사되어 있어 조금 아슬아슬했다.

2019년 4월 13일 토요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페르소나’를 보고..


포스터와 예고편만 봤을 땐 본편에선 남자 감독과 여자 감독의 차이를 즐길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는데 막상 영화들을 쭉 보고 며칠이 지나니 그런 것 보다는 그냥 아주 오래 전에 종종 다니던 대학 영화과 졸업 영화제에 다녀 온 기분이다. 기대가 커서인지 실망도 컸다.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엔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아이유가 나오고 SNS상에선 나름 화제성 순위가 높은 감독들의 영화여서인지 뭔가 긴가민가 최첨단 유행의 힙한 영상물을 본 것 같기도 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건 아이유나 감독들의 이름값보다는 영화 시작 전에 뚜둥하고 뜬 넷플릭스 로고 탓인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커먼 배경에 빨갛게 뜨는 넷플릭스 로고만 봐도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작품이 뭔가 달라 보이는 넷플릭스 버프에 씌인 것이다. 가장 실망이 컸던 건 이경미의 ‘러브세트’고 의외로 좋았던 건 김종관의 ‘밤을 걷다’. 분위기가 근사했다. 임필성의 ‘썩지 않게 아주 오래’는 예상대로고 전고은의 ‘키스가 죄’는 나로선 이해 불가다. 배우나 투자사가 아니라 감독이 전면에 드러나는 영화를 오랜만에 보고 새삼 느낀 건데 역시 영화는 감독 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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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0일 수요일

넷플릭스로 OCN 드라마 '빙의'를 보고..


끝내준다. 이런 OCN 장르물은 처음 봤다. 내가 OCN 장르물의 역사를 쫙 꿰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이런 OCN 장르물은 없었을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봐 왔던 OCN 장르물 중 최고다. 너무 내 스타일이다. 예고만 봤을 땐 이런 드라마인 줄 몰랐다. 그냥 귀신이랑 형사 나오는 흔한 OCN 장르물인 줄 알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무조건 지켜야 하는 OCN 나름의 공식이랄까 법칙 같은 게 있어서 이런 OCN 장르물이 가능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빙의’도 OCN 장르물이므로 그런 법칙들을 지키긴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런 걸 지키긴 지키는데 끊임없이 비틀고 변주하고 막판에 김을 뺀다는 것이다. 보통 OCN 장르물이 진지해지거나 비장해지거나 울리거나 무서워져야 할 타이밍에 ‘빙의’는 그러려다 말고 말장난을 하거나 웃기려 들고 툭하면 삼천포로 빠진다. 심지어는 주인공도 바뀌었다. 바뀐 건 아닌데 바뀐 거나 마찬가지다. 세상에 이런 드라마가 어딨나? 이 정도면 가벼운 메타 장르물이라고 봐도 될 듯 하다. 개인적으론 너무 좋아서 매 순간 오열하며 봤는데 안타까운 건 대부분의 개그들이 빵 터지는 류가 아니라 취향을 심하게 타는 썩소나 피식 또는 실소 류라는 것이다. 그 흔한 꽃미남이 한 명도 안 나오고 여주인 고준희도 지나치게 예쁘다. 설상가상 그 예쁜 고준희가 평범 이하 남자를 지고지순 사랑해준다. 그래서일까? 10회 시청률이 1.7%이고 현재 추세로 보아선 향후 2%대 돌파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나는 너무 좋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드라마가 가능했는지 어이가 없어서 작가 프로필을 뒤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전작들이 영화 쪽이다. 역시나다. 격하게 응원한다! 앞으로도 작가님 하고 싶은 거 다 하시고 부디 남은 6회 안에 역전 만루 홈런 날려주심 좋겠다.

2019년 4월 7일 일요일

넷플릭스로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를 보고..



간만에 끝까지 본 정통 로맨틱 코미디였다. 장르의 공식을 충실히 따랐고 시대상도 적당히 반영되어 있고 스토리와 때깔이 아기자기하고 남자 주인공마저 멋있어서 이 정도면 시청률도 잘 나왔을 것 같아 무심코 확인해봤는데 3프로로 시작해 1프로로 끝났다. 최근에 끝까지 본 ‘로맨스는 별책부록’이 4프로로 시작해 7프로로 끝난 걸 생각하면 여러모로 의외다.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장르적 완성도는 ‘로맨스는 별책부록’보다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데 시청률은 반대여서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여자 주인공 캐릭터 때문인 것 같다. 

일단 ‘일뜨청’ 여주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 이쪽 장르 메인 시청 층의 연령대가 잘은 모르지만 20대는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론 최소 30대 중반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20대 열정 만렙 취준생 김유정보다는 30대 경력 단절 이혼 여성 이나영에 감정 이입이 더 쉬울 것이다. 응원하고 싶은 대상도 당연히 이나영 승이다. 여주의 직장도 일조를 했을 것이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는 스포츠 관련 회사 직원보다는 잘 나가는 출판사 ‘기획팀’ 일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남주의 재력이다. 재벌은 아니지만 재벌에 가까운 ‘일뜨청’ 남주가 인세 받는 스타 작가이자 출판사 편집장 ‘로별’ 남주보다 훨씬 부자지만 이젠 남주의 재벌 설정은 좀 식상하기도 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나 싶다. ‘일뜨청’ 여주가 30대 경력 단절 이혼 여성이었다면 1%로 끝나진 않았을 듯.


2019년 4월 6일 토요일

넷플릭스로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보고..




원빈 아내 이나영의 오랜만의 컴백작이어서 봤는데 보면 볼수록 캐릭터와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라기보다는 누군가의 바람이나 이상향을 꼼꼼하고 상세하게 묘사해놓은 설정 북 같은 걸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16화까지 다 봤는데 요약하자면 이런 거다. 나는 아이가 있는 유부녀지만 하필이면 남편이 파렴치하고 이기적이고 못 생겼고 무능력하고 돈도 없고 나보다 나이도 많은 나쁜 놈인데 편리하게도 아이는 조기 유학을 떠나 있어서 초반에만 잠깐 나오다 말고 남편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떠나는 바람에 한국엔 나 혼자여서 남편 대신 나를 지고지순 좋아해 주고 챙겨주는 잘 생기고 능력 있고 돈도 많고 오직 나만이 치유해줄 수 있는 독특한 트라우마를 가진 키가 180cm이상인 연하남이 이왕이면 냉미남 온미남 구색 갖춰 최소 둘 이상 있으면 좋겠고, 나는 독립적인 성격이라 바라지도 않는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둘이 나를 더 챙겨주겠다고 싸워주면 좋겠고, 나는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연하남 소유의 인테리어가 근사한 그림 같은 2층 양옥집에서 연하남과 알콩달콩 동거를 하고 있으면 좋겠고, 더 이상 민폐 끼치기 싫어서 원룸이라도 얻어서 나가려고 하면 자길 떠나지 말라고 붙잡아 주면 좋겠고, 연하남에게 좋은 차가 있어서 나의 출퇴근을 챙겨주고 오밤중에라도 어디 갈 곳이 생기면 나 혼자 택시타고 갈 수도 있지만 굳이 데려다주겠다고 무리해서라도 따라나서 주고 가끔은 기분 전환 드라이브도 시켜주면 좋겠고, 연하남의 배려 덕분에 굳이 일은 안 해도 되지만 마냥 놀 수는 없으니 인테리어가 근사한 출판사 같은 곳에서 크리에이티브한 ‘기획’ 일을 하면 좋겠고, 처음엔 다들 나의 겉모습과 스펙만 보고 무시하지만 꾹 참고 캔디처럼 씩씩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끔은 부당하게 나의 공로도 빼앗겨가며 일하다가 사내 공모전 같은 곳에 별 기대 없이 익명으로 응모했는데 덜컥 일등을 차지하는 바람에 화려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나를 무시했던 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면 좋겠다! 극중 이나영은 정말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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