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빈 아내 이나영의 오랜만의 컴백작이어서 봤는데 보면 볼수록 캐릭터와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라기보다는 누군가의 바람이나 이상향을 꼼꼼하고 상세하게 묘사해놓은 설정 북 같은 걸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16화까지 다 봤는데 요약하자면 이런 거다. 나는 아이가 있는 유부녀지만 하필이면 남편이 파렴치하고 이기적이고 못 생겼고 무능력하고 돈도 없고 나보다 나이도 많은 나쁜 놈인데 편리하게도 아이는 조기 유학을 떠나 있어서 초반에만 잠깐 나오다 말고 남편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떠나는 바람에 한국엔 나 혼자여서 남편 대신 나를 지고지순 좋아해 주고 챙겨주는 잘 생기고 능력 있고 돈도 많고 오직 나만이 치유해줄 수 있는 독특한 트라우마를 가진 키가 180cm이상인 연하남이 이왕이면 냉미남 온미남 구색 갖춰 최소 둘 이상 있으면 좋겠고, 나는 독립적인 성격이라 바라지도 않는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둘이 나를 더 챙겨주겠다고 싸워주면 좋겠고, 나는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연하남 소유의 인테리어가 근사한 그림 같은 2층 양옥집에서 연하남과 알콩달콩 동거를 하고 있으면 좋겠고, 더 이상 민폐 끼치기 싫어서 원룸이라도 얻어서 나가려고 하면 자길 떠나지 말라고 붙잡아 주면 좋겠고, 연하남에게 좋은 차가 있어서 나의 출퇴근을 챙겨주고 오밤중에라도 어디 갈 곳이 생기면 나 혼자 택시타고 갈 수도 있지만 굳이 데려다주겠다고 무리해서라도 따라나서 주고 가끔은 기분 전환 드라이브도 시켜주면 좋겠고, 연하남의 배려 덕분에 굳이 일은 안 해도 되지만 마냥 놀 수는 없으니 인테리어가 근사한 출판사 같은 곳에서 크리에이티브한 ‘기획’ 일을 하면 좋겠고, 처음엔 다들 나의 겉모습과 스펙만 보고 무시하지만 꾹 참고 캔디처럼 씩씩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끔은 부당하게 나의 공로도 빼앗겨가며 일하다가 사내 공모전 같은 곳에 별 기대 없이 익명으로 응모했는데 덜컥 일등을 차지하는 바람에 화려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나를 무시했던 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면 좋겠다! 극중 이나영은 정말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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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6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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