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6일 목요일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정직한 발렛파킹

 


회사가 강남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어 주차난이 심각하다. 건물 앞 좁은 주차장은 언제나 만원이고 건물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유료 주차장은 비싸서 회사에 손님이 오면 직원 중 누군가는 손님차 키를 받아 주차 관리를 해 주어야 한다. 내가 바로 울 회사 발렛파킹 전문 요원이다.


대표차는 물론이고 잠깐씩 왔다갔다 하는 손님들 차를 주변 건물 주차 관리 요원들과의 긴밀한 협조 속에 빼박이 해주면서 하루를 보내는게 나의 주요 업무이기도 한데 한번은 대표가 새로 뽑은 차를 끌고 좁은 골목길을 후진하다 뒤쪽에서 다가오는 차의 빽미러를 꺽은적이 있다. 아 씨바 X됐다 싶어 차에서 내려 대표차에 혹시나 기스라도 나지 않았나 싶어 차를 살펴보니 역시나 1cm 길이의 기스가 나 있었다. 뒤에서 오는 차는 빽미러가 꺽여 있고 뽑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대표차는 기스가 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일단 빽미러 꺽인 차가 국산이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차 주인 아줌마의 분노를 누그러뜨린 다음 가까운 카센터에서 기스 땜질 작업을 했다. 기스 땜질 작업이 티가 많이 날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요리 보고 저리봐도 깜쪽 같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물론 빽미러 꺽은 비용은 청구하지 않았고 사고 사실도 보고하지 않았다. 혹시나 대표가 눈치라도 채면 어쩌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도 불편해 그냥 자수해서 광명찾으려고 했지만 카센터 주인 아저씨가 땜질이 깜쪽같아 아무도 눈치 못 챌거라고 호언장담을 하며 자신만 믿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저씨만 믿고 시침 뚝 떼고 모른 척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무사히 몇 달이 흘렀다.


차라리 가슴 졸이지 말고 정직하게 사고 사실을 보고 했다면 오히려 나의 정직성이 높게 평가되어 대표에게 더욱 사랑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망상도 해봤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그냥 모른척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날 이후 대표 자신이 좁은 골목길을 운전하다 꾸준히 차에 기스를 내 주어서 내가 낸 기스 정도는 새발에 피 정도 밖에 되지 않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원래 이 동네가 국산차보다 외제차가 많고 길은 좁은데 차가 많아 언제 긁혀도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고 누가 긁고 도망가도 그러려니 하고 만다. 막말로 기스를 내놓고 내가 한 거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밀어도 되는 분위기지만 내가 찌질하긴 해도 양아치는 아니다.


하루는 평소 별 볼일 없어보여 무시하던 연예인이 회사에 차를 끌고 왔길래 주차 관리 해주러 내려가봤더니 b자로 시작하는 고가의 외제차가 서 있는게 아닌가. 나보다 공부도 못했을 테고 인기도 별로 없는 연예인은 외제차 끌고 다니고 나는 그 외제차 빼박이 신세라니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원망스러웠지만 발렛파킹 전문 요원으로서 회사의 이름을 걸고 프로페셔널답게 깔끔하게 주차 관리를 해주었다.


물론 팁은 없었다.

덧글

  •  acid 2007/09/18 15:23 # 답글

    아무래도 저희 회사 근처 같은데... (저도 영화삽니다)
  •  애드맨 2007/09/18 15:45 # 답글

    반갑습니다.^^
  •  Kitano 2007/09/19 01:50 # 답글

    근데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쓰시면 대표님이 아시는 거 아닙니까 ㄷㄷㄷ;;
  •  애드맨 2007/09/19 01:52 # 답글

    울 대표는 네이버와 이메일 밖에 몰라요.ㅎㅎㅎ;;
  •  빈틈씨 2007/09/19 09:31 # 답글

    너무 재밌어요 ^^ 잘 보고 갑니다
  •  tommi 2007/09/20 12:57 # 답글

    하하하하하하 너무 재밌어요
  •  아슈 2007/10/23 15:50 # 답글

    어쩌다 발견했는데, 일이 많아도 역주행을 멈출수가 없어요.
    제 주무대(?) 와 비슷한 동네라 남 같지 않은데
    맨 마지막 문단은 정말.. 가슴에서 피눈물이 날 정도로 정곡입니다..
  •  애드맨 2007/10/23 19:52 # 답글

    아슈님 // 주무대가 비슷하다니 오며가며 마주쳤겠군요. 일방은 꼭 지키고 양보운전하자구요..^^
  •  LeAn 2007/10/29 14:43 # 답글

    역주행을 멈출수 없다는 말에 200% 동감.
    글을 너무 잘 쓰셔요!!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사다리타기

 


대부분의 영화사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

내가 다니는 영화사도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은데 무슨 이유에선지 회사 내에서 군것질을 자주 하게 된다. 난 길거리 다니면서 포장마차나 트럭에서 떡볶이나 순대를 사 먹어 본 적이 별로 없는데 여직원들은 회사 근처의 포장마차나 트럭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떡볶이, 순대 그리고 튀김 사먹는걸 매우 좋아한다. 보통 오후 3~4시 사이에 단체로 군것질을 하는데 돈 내는 사람은 사다리타기로 결정된다. 총 열댓명의 직원들이 사다리타기해서 두명 정도가 당첨되는데 나도 그동안 두 번인가 세 번 걸려서 몇 번 군것질 심부름을 갖다 온 기억이 난다.


단골 노점상 떡볶이집 주인 아주머니에게 떡볶이 5인분, 순대 5인분, 튀김 5인분을 주문하면 이렇다할 객관적인 기준없이 대충 포장해서 주는데 5인분 시킬 때나 3인분 시킬 때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 살 때마다 손해보는 기분이다. 한번은 좀 많이 주세요라고 강하게 어필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무섭게 노려보며 오히려 평상시보다 더 적게 주는게 아닌가. 강하게 어필해봤자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아 다음부터는 군소리없이 주는 만큼만 곱게 포장해서 배달해오곤 한다. 우리 회사 앞 떡볶이집 주인 아주머니는 얌전히 있는 손님에게 그나마 많이 챙겨주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회사로 돌아와 떡볶이, 순대, 튀김을 테이블 위에 세팅해 놓으면 각자 업무를 보고 있던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빠른 속도로 먹어치워버린다. 바로 이 때가 회사 생활 중 가장 보람있고 뿌듯한 순간이다. 내가 준비한 간식을 맛있게 먹는 직원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회사 생활 잘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생각해보니 입사 초기에는 사무실에 먹을 게 많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버렸다. 탕비실이라는 곳에 믹스커피가 있고 녹차가 있고 온갖 종류의 과자와 군것질거리들이 항상 준비되어 있었는데 요즘엔 커피와 녹차만 남아 있다.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이게 다 한국 영화가 어렵기 때문인걸까?


한국 영화 어려운 거랑 내가 지금 이렇게 도배하듯 블로그에 낙서하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오늘은 월요일이라 주간회의 준비도 해야 되고 진행 중인 작품 시나리오 회의도 해야 되고 미루고 있던 주목할만한 원작 판권도 알아봐야 되는데 새벽까지 잠 못 이루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번 주에는 그동안 밀린 진행비나 나왔으면 좋겠다. 일단 자비로 쓰고 나중에 영수증 청구하면 준다고 했을 때부터 뭔가 수상하긴 했는데 역시나 안 나온다. 남의 돈 받아내기가 이렇게 힘들다.


진행비도 안 나오는 마당에 사다리타기도 신중하게 해야겠다.

덧글

  •  Kitano 2007/09/17 13:19 # 답글

    저도 영화를 배우고 있는 학생입니다. 게다가 제작입니다. -_-;
    아 이 블로그를 어제 우연히 발견했는데..
    글을 읽다보니 우울해지는군요..^^;;;;
    괜히 이 일 선택했나..졸업한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고 어째;;
  •  검은머리요다 2007/09/17 20:09 # 답글

    일단 자비로 영수증 청구,, 아주 구린내가 풀풀납니다요.
  •  tommi 2007/09/18 06:12 # 답글

    입사 초기에는 사무실에 먹을 게 많았었는데 요즘엔 커피와 녹차만 남아 있다. - 같은 회사 이신줄 알았습니다 ㅋㅋ
  •  애드맨 2007/09/18 15:19 # 답글

    kitano//잘 나가는 사람들 블로그를 자주 가세요.^^
    검은머리요다//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tommi//커피는 떨어지기도 합니다. 같은 회사는 아닐거에요.ㅎ
  •  tommi 2007/09/20 12:57 # 답글

    요즘 커피 떨어졌는데 리필이 안되고 있습니다. 같은회사 맞나요?ㅋ
  •  애드맨 2007/09/20 14:30 # 답글

    우리는 리필됐어요 ㅎㅎ
  •  마력덩어리 2007/10/16 21:12 # 답글

    사장님이 블로그 읽으셨군요ㅎㅎㅎ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우유부단한 미래

 


다른 회사 기획팀 직원 한 명과 회사 망하면 뭐 먹고 살 것이냐에 대해 한 시간 정도 메신저로 담소를 나누었다.


우리 둘 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현장을 떠난지도 오래되서 월급도 없는 연출부나 제작부로 새출발하기는 싫고 일천한 경력에 프리랜서 기획 PD랍시고 명함 한 장 달랑 들고 이 영화사 저 영화사 전전할 수는 있지만 비웃음만 살 것이고 누가 갑자기 작가나 감독을 시켜줄 리도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기획팀을 축소하면 했지 새로 인력을 충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다른 영화사 기획팀에 들어갈 수도 없다.


결국 계속 월급 받으며 사회생활 하고 싶으면 지금 다니는 회사가 망하지 않기만을 바래야되는데 회사는 망하지 않더라도 기획팀 직원들은 짤릴 수 있기 때문에-실제로도 많이 짤렸고- 최소한 회사가 망하기 전까지만이라도 안 짤리고 다닐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았다.


사실 한국 영화계에서 기획 PD는 매우 애매모호한 포지션이라 일찍이 차승재 대표님께서는 한국 영화계에 기획 PD따윈 필요없다고 강의하신 적도 있다. 아이템을 발굴해서 작가를 붙이고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투자사에서 펀딩을 받고 감독을 선정하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의 기획PD 업무는 현실적으로 역량 있는 영화사 대표여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기획팀은 그런 일을 하는 영화사 대표를 보조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물론 그런 일들을 다 할 수 있는 역량있는 기획 PD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을 다 할 수 있는 경험이 풍부하고 역량있는 기획 PD가 영화사를 차리지 않고 남의 밑에서 일하고 있다면 분명 뭔가 피치 못할 사연이 있기 때문이라고 봐도 좋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기획팀 직원으로서 경쟁력을 갖고 이 험난한 영화판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아이템 발굴 추천 작업은 독서와 영화 감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우리 같은 놈들의 추천은 20대 초중반 여성의 추천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별다른 메리트가 없다. 우리 같은 놈들 백명이 좋다고 환장을 하며 추천해도 20대 초중반 여성 몇 명이 그 아이템에 대해 비호감이라면 게임 오버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사 기획팀 직원은 젊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고 어떤 영화사는 전직원이 여성인 경우도 있다.


기획팀 직원으로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시나리오도 잘 쓸 수 있어야 된다는 의견도 있긴 하다.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안 만드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기획팀 직원 생활을 하면서 시장에 팔리는 시나리오도 쓸 수 있다면 회사를 다닐 이유가 없다. 시나리오 한편만 제대로 팔아도 기획팀 직원 일년 연봉보다는 많이 벌기 때문이다.


이래 저래 답이 나오지 않는 기획팀 직원의 미래에 대해 담소를 나누다보니 결국은 대표에게 잘 보여서 귀여움 받는 수 밖에 없다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결론이 나왔다. 다른 회사 기획팀 직원과의 대화창을 닫은 후 대표에게 사랑받는 방법에 대해 잠시 고민해봤는데 아무래도 회사가 망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오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덧글

  •  LeAn 2007/10/29 14:46 # 답글

    늘 고민하던 문제이자 앞으로도 계속 고민할 수 밖에 없는 문제죠... OTL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시나리오 모니터

 


눈을 뜨자마자 극장에 가서 조조로 한국 영화 한편을 보고 왔다. 왠만한 한국 영화는 시사회로 보는데 요즘엔 개봉하는 한국 영화 수가 너무 많아 시사회로 다 커버를 못 하기 때문이다. 예전엔 보고 싶은 영화만 보고 살았는데 영화사 입사 이후엔 대표와의 대화 중 특정 영화 얘기가 나올 때 그 영화 아직 안봤다고 하면 기획하는 사람이 어떻게 개봉 영화를 안 볼 수가 있냐며 화를 내기 때문에 다 챙겨본다.


영화에 대한 꿈만 있던 시절에는 극장에서 바보같은 영화를 보게 되면 극장을 나오면서부터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하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인터넷 게시판에까지 악평을 남기고 퍼 나르고 했는데 요즘엔 저런 영화라도 만들어서 극장에 걸어봤으면 하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무리 바보같은 영화를 만든 사람이라도 알고보면 대부분 좋은 학교 나오고 똑똑하고 말도 잘하며 처세에도 능한 사람들이다. 제작사나 투자사에 그런 사람 한둘씩은 꼭 섞여 있다. 영화계에 학벌 인플레 현상이 생긴지는 제법 오래 되서 메이저 투자 제작 배급사에 가면 명문대는 기본이고 유학파도 그냥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하다.


그렇다면 왜 그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같은 영화를 만들었는지가 궁금해지는데 그건 집단 지성의 부작용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집단 지성은 그냥 웃자고 한 소리고;; 보통은 그냥 재수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이 모든 건 재수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떤 영화가 바보같은 영화인지를 평가하는 기준은 물론 흥행 성적이다. 정성일, 유지나 등이 활약하던 동숭아트센터에서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2만 들던 시절에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에는 예술성이라는게 있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그런 소리 하면 아무도 안 놀아준다. 특히 요즘 같이 수익률을 따지는 시대에 상업 영화가 예술 영화나 작가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건 사실 굴욕이나 다름없다. 알고 보면 독립, 예술, 작가주의 영화 만드는 사람은 대부분 생계형 영화인이 아니다.


영화를 보고는 회사에서 못 읽고 집으로 가져온 시나리오 몇 편을 읽었다. 작가 혼자 집에서 쓰고 있는 시나리오도 있고 영화사에서 사랑과 기대를 받으며 진행하고 있는 시나리오도 있지만 시나리오가 영화화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도 역시 운이다. 수백편(?)의 시나리오 중 영화로 만들어지는건 1%도 안 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법대로 잘 썼다고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못 썼다고 안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좋다고 평가한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니라고 평가한 시나리오라고 안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모두가 쓰레기라고 평가한 시나리오도 유력인사 한 명이 좋다고 하면 영화로 만들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유력인사 한 명이 좋게 보면 쓰레기라고 평가했던 사람들도 시나리오를 다시 읽어보며 마음을 바꾸는 일도 흔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평가할 때는 언제나 다른 이들의 눈치를 슬쩍 보게 된다. 특히나 투자 검토 차원에서 회사로 들어온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대표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게 된다. 내가 높게 평가한 시나리오를 대표가 낮게 평가하는 일이 반복되면 나라는 인간 자체도 저평가되기 때문이다.

덧글

  •  미디어몹 2007/09/17 16:42 # 삭제 답글

    애드맨 회원님의 포스트가 금일 오후 05:00에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링크될 예정입니다. 익일 다음 헤드라인으로 교체될 경우 각 섹션(시사, 문화, 엔조이라이프, IT과학) 페이지로 옮겨져 링크됩니다.
  •  애드맨 2007/09/18 15:19 # 답글

    잘하셨습니다.
  •  하하하 2007/10/29 17:58 # 삭제 답글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그당시 2만이었다고요? 아..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군요^^
  •  노란싹수 2007/12/04 16:08 # 답글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었군요. -_-
  •  무명씨 2008/01/10 06:38 # 삭제 답글

    그러고 보니 저도 2만중 하나였군요... 당시 여친이 보러가자 그래서 코아아트홀에 가긴 갔는데 이건 뭐 의자도 없어서 등받이도 없는 간이의자 놓고 보고... 참 오래된 얘기군요.
  •  애드맨 2008/01/10 13:28 # 답글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ㅎㅎ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떼먹힌 돈

 


영화 하는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 하고 집에 들어오면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는다. 남들은 잠이 안오면 술을 마신다는데 나는 술을 마시면 잠이 안 온다. 영화하는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그동안 영화 일을 하다가 떼먹힌 돈이 생각난다. 언제 어느 회사에서 누구와 일을 했을 때 얼마를 떼먹혔는지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무슨 영화건 초기에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은 나름대로 잘 나가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일 한번 같이 해보자는 연락을 받고 한배를 타게 되면 나도 모르게 긍정적인 인간으로 변신한다. 불안한 영화산업이 마냥 유망해 보이고 그럴듯한 아이템 하나만 있으면 대박도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열심히 회의하고 밤을 새가며 시나리오를 쓰며 열심히 꿈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진행하는 작품의 투자 유치나 캐스팅 실패가 반복되면 영화사도 돈이 떨어진다. 투자 유치 실패에 장사없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대안없이 버티다 보면 결국 주변에 민폐끼치며 근근히 연명하는 식물 회사가 된다.


문제는 남의 말만 믿고 열심히 일을 한 사람들이다. 어차피 월급은 없었고 가끔 나오는 쥐꼬리만한 진행비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회사에 돈 없는 걸 아니까 눈치보면서 점심이라도 챙겨주면 고마워하고 가끔 술이라도 사주면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술이라도 사줄 수 있으면 그나마 대표가 인간성이 좋거나 사정이 괜찮은 경우다.


작품을 접겠다는 최종통보를 받고 빈손으로 집에 오면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남의 말만 믿고 열심히 일을 했는데 남은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기는 커녕 회사에 드나들던 차비와 통화료 그리고 기회비용을 계산하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삽질이었다는 손익계산서가 나온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일 시작하기 전에 약속했던 소정의 계약금도 못받는게 아닌가 싶어 초조해진다. 당장 전화해서 달라고 하고 싶지만 그래도 의기투합해서 같이 일하던 정을 생각해서 몇 달 기다려본다.


물론 몇 달 기다려도 연락은 없다. 사실 작품이 엎어지면 그만 두고 나간 사람은 어차피 눈 앞에 보이지 않으니 더 안 챙겨준다. 돈 줄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선 돈 달라는 전화가 와도 돈 없다고 배째고 카드 연체 몇 달째라고 우는 소리 하면 그만이다.


이제는 결단의 시간이다.


인터넷을 여기저기 뒤져보며 밀린 급여 받는 법 등을 검색해본다. 제대로 검색을 했다면 딱히 대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친 척하구 인터넷 게시판 여기저기에 XX영화사의 만행이나 파렴치한 XX감독이라는 식의 글을 올리고 싶지만 마음이 모질지 못한 대부분의 영화인은 돈 몇백쯤은 그냥 포기하고 딴 일 찾아본다.


이런 일들이 몇 번 반복되면 떼먹힌돈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게 된다. 증세는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나 같은 경우는 술 먹고 집에 들어오면 잠이 올 때까지 떼먹힌 돈을 전부 더한 후 내 돈을 떼먹은 사람이 나한테 잘해준만큼의 금액을 빼고 못해준 만큼을 더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강박증으로 나타난다.

이 블로그에 내 돈 떼먹은 놈들 실명을 공개하면 강박증이 없어질까?

덧글

  •  netphobia 2007/09/16 13:07 # 답글

    떼먹힌돈 다 받아내면 최소한 서울에서 전세하나 얻을수있다는게... 떠오릅니다.
    아휴....
  •  애드맨 2007/09/16 20:09 # 답글

    저보다 많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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