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슈퍼히어로 영화만 보면 잠이 왔다. 재미는커녕 끝까지 제대로 본 기억조차 거의 없다. 그래서 히어로물은 개봉하든 말든 인터넷에 뜨면 다운받아 보거나 스트리밍으로 봤는데 여전히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극장에서 봤을 땐 영화 같긴 했는데 집에서 보니 영화 같지도 않았다. 영화 같은 동영상? 그러던 차에 아무 생각 없이 넷플릭스를 뒤지다(넷플릭스 추천 아님) ‘지그라 불린 사나이’라는 영화를 발견하고 아무 기대 없이 봤는데 이게 웬걸? 의외로 재밌었다. 논스톱으로 끝까지 봤다. 그간의 히어로물에선 보기 드문 청소년 관람불가여서인지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데드풀과는 다르다. 데드풀은 등급만 청소년 관람불가지 결국은 마블 특유의 아동스러움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지그는 그런 거 없다. 말 그대로 어덜트 히어로물이다. 잔인하고 화끈하며 현실적이다. 꿈과 희망은 당연히 없고 초능력도 별 거 없다. 그냥 힘만 쎄다. 가벼운 상처는 금방 치유되지만 신통방통한 재생 능력 같은 건 없다. 빌런 역시 마찬가지다. 고만고만하다. 이야기도 뻔하다. 히어로물 공식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내세울 건 오로지 캐릭터에 대한 공감과 표현의 리얼함뿐인데 그게 먹혔다. 멜로 라인도 신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게 딱 적절했다. 이걸 보니 내가 히어로물과 안 맞는 게 아니라 마블의 히어로물과 맞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