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0일 목요일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동아줄

 

 

웹써핑 중 우연히;; CJ그룹에서 2008년 상반기 대졸신입사원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CJ인재개발위원회에서 내가 제출한 입사원서를 본다면 내세울 거라곤 현장 스텝 몇 번하고 망해가는 영화사에 다니는게 전부인 주제에 감히 하늘같은 대기업에 입사원서를 냈다고 비웃으며 서류전형에서 탈락시킬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래도 믿져야 본전이니 지원은 해 봐야겠다. 만약 CJ엔터테인먼트에 아는 직원이 있다면 뇌물이라도 주며 인사청탁이라도 해보고 싶지만 그동안 영화계 언저리만 떠돌아다니며 영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빌빌대기만 해서인지 CJ엔터테인먼트에 아는 직원이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인사청탁은 커녕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한 채용 정보 수집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예전에 CJ그룹에서 영화사를 만들고 직원도 채용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당시 영화계에서 한참 잘 나가던 믿고 따르는 어르신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 믿고 따르는 이 어르신을 끝까지 믿고 따르는게 CJ그룹 계열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직원이 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어르신의 온갖 구박과 핍박 그리고 무시와 하대 속에서도 꿋꿋이 어르신의 잔심부름과 뒤치닥거리를 하며 줄을 제대로 서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보시다시피 지난 6개월간 연재한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비공식업무일지에 적혀 있는 바와 같고 그 어르신조차 현재는 영화일을 하고 있지 않다.


그 어르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영화일을 하며 믿고 따르려고 노력했던 다른 어르신들도 마찬가지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원래 잘 살던 어르신들은 일이 없으니 당분간 쉬었다가자는 마인드인 것 같고 좀 팍팍하게 살던 어르신들은 불황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싸워보자는 마인드로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봉준호나 김지운 감독 같은 상위 1% 브랜드 흥행감독들을 제외하면 영화를 잘 만들건 못 만들건 인품이 훌륭하건 말건 잘살고 못사는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는 것 같다. 그 분들의 과거 필모그라피를 살펴보면 다들 영화로는 큰 돈을 번 적이 없다는 사실을 미루어 알 수 있게 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기준으로 봤을 때나 믿고 따르는 하늘같은 어르신들이지 영화 흥행의 신 앞에서는 그들이나 나나 다들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CJ엔터테인먼트는 다르다. CJ엔터테인먼트에 아는 직원이 없어 직접 확인한 사실은 아니지만 아마 자체 제작한 영화가 쪽박을 차건 말건 대한민국 국민이 설탕을 끊기 전까지는 직원들에게 월급도 주고 심지어는 보험까지 챙겨줄 것이다. CJ엔터테인먼트 채용 공고는 월급 받으며 영화하는 게 소원인 사람들에겐 호랑이에게 쫓겨 나무 위에 올라간 햇님 달님 오누이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금 동아줄과도 같은 것이다.


작년에는 롯데엔터테인먼트에 지원했다가 아마도 인터넷 에러로 인한 전산착오로 서류전형에서 탈락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인터넷 에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차근차근 입사 지원에 임해야겠다.


오다 가다 만난 어르신들 중엔 본인이 차린 신생 영화사를 CJ엔터테인먼트보다 크게 키우겠다는 포부를 가진 분이 계셨는데 요즘엔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다. 그래도 요즘엔 추운 겨울 다 지나고 날씨가 따뜻해져서 밤에도 얼어죽을 정도로 춥진 않아 다행이다.

혹시나 서류전형에서 무사히 통과하고 면접까지 갔다가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학벌도 좋고 영어도 잘하는 망해가는 영화사에서 도망간 아는 인턴이라도 만날까봐 걱정인데 만약 걔들이 최종합격하고 나는 떨어진다면 영화판 선배랍시고 생색냈던 그 때 그 시절이 엄청 부끄러워질 것 같다.

그래도 일단은 망해가는 영화사 모르게 지원은 해보려고 하는데 또 다시 인터넷 에러가 날까봐 걱정이다.





1. 모집부문 및 우대전공
모집회사모집직무우대전공관련사항지역모집
인원
CJ제일제당경영기획
경영학, 경제학
영어 능통자서울
OO
재무
경영학, 경제학
CPA, CFA 등 유사금융자격증
영어능통자
서울
구매
경영학, 경제학,기계공학
구매관련 자격증 소지자 우대
영어,중국어 능통자
서울
인사
경영학
 이천, 논산, 부산
글로벌 디자인
시각디자인, 패키지디자인
영어 능통자
해외학위 및 연수자 우대
서울
리서치
경영학석사이상 지원 가능서울
식품영업
전공 무관
 수도권, 대전, 광주, 전주, 대구, 마산, 부산
제약영업
전공무관
 성남, 인천, 원주, 대전, 광주, 대구, 전주, 부산, 마산
사료영업
축산학
 전국
해외영업
경영학, 경제학
영어 능통자서울
제약등록
약학계열
 서울
제약임상
약학, 간호학, 수의학, 생물학 서울
품질관리
약학, 제약학, 생명공학, 미생물, 화학공학, 유전공학영어 능통자
수원, 이천
기술개발
식품공학, 식품가공학영어, 일본어 능통자
서울
생산기술
식품공학, 화학공학,
미생물공학
영어 능통자
수도권, 논산, 부산
R&D(식품)
식품(가)공학, 식품생명, 식품화학, 미생물학, 약학 및 생명공학, 식품영양학, 생물공학, 축산가공, 수산가공 계열석사이상 지원 가능
영어 능통자
서울
R&D(포장개발)
포장학, 식품공학, 화공학영어 능통자
서울
R&D(제약)
약동학(약학), 약제학, 제제학, 수의학, 생물학, 화학,
유기화학

석사이상 지원 가능

이천
R&D(BIO)분자생물학, 유전공학, 미생물학, 생명공학, 생화학,
발효공학
석사이상 지원 가능
영어, 일본어 능통자
서울
CJ푸드시스템유통영업
전공무관
 수도권, 부산, 대전OO
MD
전공무관
영어, 중국어 능통자
서울
경영지원전공무관 서울
CJ엔터테인먼트
영화컨테츠개발
영화/영상 계열
영어 능통자서울
OO
CJ미디어
인사경영학, 행정학
공인노무사서울OO
CJ케이블넷경영관리
상경계열
 서울, 경기
OO
방송서비스기획
상경계열
 서울, 경기
구매
상경계열
CPM
서울, 경기
정보전략
산업공학/상경계열
IT관련 자격증
(DBA,MCSE,SAP)
서울, 경기
영업관리
상경계열
 서울, 경기, 경남
전송망관리
전기전자/정보통신계열
 서울, 경기
시스템운영
전기전자/정보통신계열
 부산,경남
방송인터넷영업상경계열 부산,경남
CJ홈쇼핑TV MD
전공무관
외국어 회화 가능자 우대서울OO
인터넷 MD
전공무관
외국어 회화 가능자 우대서울
카탈로그 MD
전공무관
외국어 회화 가능자 우대서울
PD
신문방송계열
외국어 능통자서울
영업관리
상경계열
 서울
방송미술
미술계열
 서울
방송카메라
방송계열
 서울
방송기술(VAT)
전자공학,영상학
 서울
방송기술(CG)
영상/그래픽계열
 서울
재무
상경계열
 서울
CJ GLS재무상경계열영어 능통자서울OO
모집 인원000명
2. 전형절차
① 1차: 서류전형
② 2차: 인지능력평가 / 비즈니스 상황에서의 가치 판단 / 직무성향검사
③ 3차: 임원면접/ 전문성 면접(직무에 따라 선택적으로 진행됩니다.)
④ 4차: 역량면접 (면접 후 OPIc Test 실시)
⑤ 5차: 건강검진
※ 각 전형절차에 대한 소개는 당사 채용 홈페이지(http://recruit.cj.net)의 FAQ를 참조 바랍니다.
※ 각 전형단계별 결과 발표는 CJ 채용홈페이지(http://recruit.cj.net)에 게시합니다.


3. 지원안내
지원자격
○ 대졸신입의 경우 대학 및 대학원 ‘08년 8월 졸업예정자 또는 기 졸업자
○ 대졸인턴의 경우 대학 및 대학원 ‘09년 2월 졸업예정자
○ 병역필 또는 면제로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없는 분
지원방법
○ CJ그룹 채용홈페이지(http://recruit.cj.net)에서 지원자를 위한 직무소개 참고 후, 희망 직무에 직접 입사 지원
   (방문접수 및 E-MAIL을 통한 접수는 실시하지 않습니다.)
입사지원서 작성 유의사항
○ 대졸신입 및 인턴을 구분하여 해당 부문에 지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지원회사, 지원직무, 지역별로 전형이 이루어지므로,
   지원회사 / 지원직무 / 희망 지역을 정확히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원서 마감은 3월 19일(수) 18:00까지 입니다.
  지원서 수정은 마감일 18:00이후 불가합니다.
 [TEST 실시장소]란에 희망하는 장소를 반드시 입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TEST는 서울, 광주, 부산에서 동시에 실시됩니다.
   - 희망지역 기재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 TEST 실시장소가 임의로 선정될 수 있습니다.
○ 일부 CJ제일제당 R&D 부문은 논문초록(혹은 예상논문 요약본 2~3 page)을 반드시 이력서에 첨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출서류 : 면접 대상자에 한해 추후 개별 안내합니다.
접수기간 : 2008년 3월 6일(목) ~ 3월 19일(수) 18:00 까지
기타사항 : 국가보훈대상자 및 장애인은 관련법규에 의거하여 우대합니다.
문의처 : CJ인재개발위원회
e-mail : applycj@cj.net
office : 02)2280-3282 ~ 3

덧글

  •  네모도리 2008/03/15 17:20 # 삭제 답글

    부서는 어디로?
    아무튼 잘 되서 고기라도 한점 얻어 먹기를 빕니다
  •  봉준호나김지운 2008/03/15 17:52 # 삭제 답글

    봉준호나 김지운이 니 친구냐고 ㅋㅋ
  •  땅콩샌드 2008/03/15 18:32 # 삭제 답글

    메이저 블로그의 훈장이 등장했군요.
  •  라엘 2008/03/15 18:35 # 삭제 답글

    영어가 능통해야 어디라도 집어넣는군요. 아님 석사라도 되어야... 우후훗. 어머 역량검사도 하네요. 장난 아니다.
  •  violetod 2008/03/15 20:20 # 삭제 답글

    모집공고는 대졸 신입 공채인것 같은데요...
    언테쪽이 특별전형이 아니라면 공통 지원 자격을 만족해야 하지않나요?
    {작년에 면접가서 떨어진놈이....}
  •  제리 2008/03/15 21:03 # 삭제 답글 비공개

    CJ.,. 신입이 2700만원. 대리가 3200만원. 과장이 4100만원. (이하 출처는 네이버 검색질)

    뭐랄까 물가라던지 개인의 능력에 비하면 연봉이 이상적이진 않네요. 한국서야 높은 축에 속한다지만 ㅎㅎ
    그래도 게임인력보다는 신입 기준 연봉이 300~900만원 더 세군요. 부럽다능 ㅠㅠ...
  •  애드맨 2008/03/15 22:16 # 수정 삭제 답글

    네모도리님 // 부서가 너무 많아 고민입니다.
    봉준호나김지운님 // 아니요;;
    땅콩샌드님 // ㅋㅋㅋ
    라엘님 // 영어에 능통하지 않아도 지원은 자유니까요. 저는 영어 못해요.
    violetod님 // 신입이라고 우기려구요 ㅋ
    ㅈ비공개님 // 연봉이 얼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  violetod 2008/03/15 23:21 # 삭제 답글

    공채같은경우 합격하고 나면 성적표 사본, 토익 성적표 및 학적부등을 서면 제출하고 만일 이 과정에 문제가 있는경우 입사가 취소됩니다. 그냥 우긴다고 되는게 아니라서요.....
    역량검사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만 서류전형시 자기 소개서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러고보니 서류전형 입력시 졸업년도를 기재했던거 같기도 하네요.
    대부분의 대기업 공채의 경우 취업 재수생은 뽑지않습니다. 졸업하기 6개월 졸업하고 6개월 이기간 안에만 입사지원이 가능 합니다. 그래서들 난리라지요.........
  •  애드맨 2008/03/15 23:45 # 수정 삭제 답글

    violetod님 // 자세한 정보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꼭 면접장에서 만나자구요~~ ㅎㅎ
  •  0000 2008/03/16 00:00 # 삭제 답글

    전 영어능통자에서 이미 글러먹었습니다...OTL
  •  애드맨 2008/03/16 01:17 # 수정 삭제 답글

    0000님 // 저는 영어에 별로 관심없습니다.
  •  비타민 2008/03/16 01:55 # 삭제 답글

    인터넷 에러에서 씁쓸함을 느끼고 갑니다.... ㅎㅎ
    행운을 빌께요!!! 꼭 잘 되셨으면 합니다!!
  •  술과고기 2008/03/16 05:15 # 삭제 답글

    문과는 도대체 뭘 해야할까요?
  •  CJ인재개발위원회 2008/03/16 10:04 # 삭제 답글

    누군지 알아야 뽑아주지
  •  애드맨 2008/03/16 10:43 # 수정 삭제 답글

    CJ인재개발위원회님 // 아유 센스있으셔라 ㅋㅋㅋ
    비타민님 // 감사합니다 ^^
    술과고기님 // 하고 싶은 일을 해야죠!!!
  •  SS800 2008/03/16 18:35 # 삭제 답글 비공개

    이거실화에요?
  •  바린 2008/03/18 23:33 # 삭제 답글

    와하하 금동아줄 비유 너무 와닿아요- 인터넷에러를 걱정하며 원서를 적고있는 1인 여기 또 있습니다..
  •  편집광 2008/03/20 20:29 # 삭제 답글

    월급받으면서 영화만드는게 꿈인데....
    도대체 영화과 안나온 일반 인문계열은 뭘 해야하는건지...
    영화과도 안나온 나는 대체 무슨 깡으로 월급받으면서 영화만들겠다는 꿈을 꾸는건지;;;;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배려

 

 

오랜만에 만난 대표님이 요즘엔 무슨 일을 하고 다니냐며 궁금해하셨다.


아는 작가 한 명 섭외해서 공짜로 작품 개발 중이라고 대답하니까 무슨 이야기인지 한 번 갖고 와 보라고 하시길래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볼 수 있다고 뜸을 들였다. 이제는 슬슬 말만 하지 말고 결과물로 승부해야 되지 않겠냐며 은근히 부담을 주길래 월급 얘기를 꺼내려다 말았다. 어차피 나가봤자 갈 곳 없고 할 일도 없다.


요즘같은 세상엔 그나마 집에서는 멀지만 출근할 사무실이 있고 내 책상이라도 있는게 얼마나 고마운 지 모르겠다. 몇 안 되는 다른 직원들도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인지 아무도 불평 불만이 없다. 다른 일자리 구하기는 힘들고 집에서 놀아봤자 답이 안 나오니 그래도 회사라는 곳에 나와 버틸 수 있을 때까진 버텨보자는 심산일 것이다. 내가 망해가는 영화사에서 알량한 자존심 내세우며 알아서 나와봐서 아는데 정말 알아서 나와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 물론 전에 다니던 망해가는 영화사는 내가 알아서 나온 지 얼마 뒤에 결국에는 망해버려 나오기 싫어도 나올 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버티는 건 모범 답안이다. 정답은 아닌 것 같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신생영화사의 무보수 각색 제의는 거절했지만 나의 1달러 각색 제의를 수락한 작가 지망생 친구가 내 아이템을 발전시킨 시놉시스를 메일로 보내왔다. 작가 지망생 친구의 시놉시스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메이저 작가를 꿈꾸는 친구에게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우리는 한국 영화계가 불황이라서 이 모양 이 꼴인게 아니라 능력이 없어서 이 모양 이 꼴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능력이 정말로 출중했다면 한국 영화 최고 전성기였던 지난 몇 년을 그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공짜나 다름없는 금액으로 의뢰한 시놉시스라지만 네이버에 올라 온 한핏줄 영화의 줄거리를 복사해서 한글 프로그램에 붙여넣고 등장인물 이름과 장소만 바꿔놓은 다음 본인이 쓴 시놉시스라고 우기면 내가 모를 줄 알았을까? 내가 이런 결과를 우려해서 일부러 원작 아이템에 대한 사전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는데 본인이 어떻게 알고 용케도 찾아냈다. 오래된 친구 사이라서 말하지 않아도 텔레파시가 통했나보다. 아무래도 언젠가 한 번 쯤은 누군가에게 제대로 쓴 소리를 한 번 듣고 주제 파악을 한 다음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서 5년 정도의 습작 기간을 거쳐야 시나리오 비스무리한 뭔가를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본인이 봉준호나 김지운보다 잘났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 힘들게 말해봤자 입만 아플게 뻔하고 그러는 너는 뭐가 잘났냐고 따져오면 살얼음장 같은 우정에 금이 갈 것 같다. 나는 진심으로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차마 내 입으론 니가 작업한 시놉시스가 너무 형편없어서 도저히 너랑은 같이 일 못하겠다는 말은 못하겠어서 대표나 마케팅 팀장을 팔아야 될 것 같다. 나는 니가 쓴 시놉시스를 너무 너무 재밌게 읽었지만 대표님이나 다른 직원들은 도대체 이게 뭐냐고 내가 써도 이거보단 잘 쓰겠다는 반응이 대다수라 욕만 오지게 먹었다고 말해주면 대충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지 알 것이다. 다음 주 쯤 회사 근처 김밥천국으로 불러야겠다. 너무 멀어서 오기 싫다고 하면 좋겠다. 바로 전화해서 알려주면 고민한 흔적이 안 보일 테니 다음 주 수요일 이후에 전화하면 적당할 것 같다.

친구의 소중한 알 권리를 위해 너무 오래는 안 끌 생각이다.

덧글

  •  라엘 2008/03/15 01:34 # 삭제 답글

    애드맨님은 배려맨~

    살얼음장 같은 우정도 지키시는 애드맨님은 그래도 따뜻한 사람이에요. ^-^
  •  PERIDOT 2008/03/15 01:50 # 삭제 답글

    친구간에도 배려하실줄 아시는 멋진분
  •  봉준호나김지운 2008/03/15 01:58 # 삭제 답글

    맨날 봉준호나 김지운이래.
    걔 둘이 니 친구세요?
  •  동사서독 2008/03/15 02:44 # 삭제 답글

    어쩌면 박찬욱일지도.
  •  샤베트 2008/03/15 14:02 # 삭제 답글

    소중한 친구일수록 쓴 소리 팍팍 해줘야 하는 법이죠;;;
  •  애드맨 2008/03/15 16:18 # 수정 삭제 답글

    라엘님 // 뒷감당이 두려울 뿐입니다. ㅎ
    PERIDOT님 // 글쎄요 ㅎㅎㅎ
    봉준호나김지운님 // 누구세요?
    동사서독님 // 과연 ㅋㅋㅋ
    샤베트님 // 그렇게 소중하진 않습니다.
  •  라엘 2008/03/15 18:36 # 삭제 답글

    봉준호나김지운님> 누구실까요, 저도 궁금하네요.
  •  비타민 2008/03/16 01:59 # 삭제 답글

    본문도 본문이지만 댓글이 너무 웃겨요 ㅋㅋㅋ
    그렇게 소중하진 않습니다 <-- 쓰러졌음...
  •  방랑자 2008/07/14 13:40 # 삭제 답글

    <봉준호나김지운>은 봉준호 혹은 김지운 아닐까요? ㅋㅋ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타임머신

 


3년 전 어느 날, 조만간 스크린쿼터가 없어질 것 같다며 영화판을 떠난 후배를 만났다.


후배는 스크린쿼터가 없어지면 한국영화도 없어질 테니 공무원이나 되서 풍요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고 했었는데 공무원 시험이 아무리 경쟁이 치열하고 합격률이 낮다지만 신인감독이 입봉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확률보다는 높고 한 번 합격만 되면 여생이 보장된다며 정~ 영화를 만들고 싶으면 주말에 틈틈이 캠코더로 친구들 불러서 만들면 된다는 것이었다.


후배가 영화판을 떠난다고는 했지만 사실 영화 일을 하려고만 했고 말만 많았지 실제로 뭔가를 한 적은 없기 때문에 영화판을 떠난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하여간 졸업 후 마냥 놀다가 시나리오 학원에서 몇 달을 보내고 영화판을 떠난 후배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긴 했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독서실이 아닌 PC방에서 온라임 게임에 빠져들었다. 눈치가 빠르고 대학교 입학 성적도 좋았고 머리도 제법 좋은 편이었던 후배는 온라임 게임의 세계에서는 영화계의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 부럽지 않은 권세를 과시할 정도의 거물이 되었지만 부모님이 공부 열심히 하라며 차려주는 따뜻한 아침밥을 먹은 후 집에서 나와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중 더 이상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참 온라임 게임에 몰입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엔 온통 눈이 쾡한 폐인들 뿐이고 갑자기 숨이 막혀오길래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허둥지둥 PC방에서 나왔지만 딱히 갈 곳이 없었다. 다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막막하기만 하던 순간, 문득 자신에겐 영화적 재능이 있으니 언젠간 훌륭한 감독이 될 거라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한국영화계엔 눈먼 돈이 돌아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도 났다.


후배가 영화판을 떠난 후엔 후배의 예상대로 스크린쿼터가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한국영화계는 전성기를 맞이했고 누군가가 말 몇마디 잘해서 눈 먼 돈을 챙겨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훈훈한 소문이 돌기도 했던 게 사실이었다. 후배의 한국영화에 대한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후배는 지금도 영화계에 눈먼 돈이 날아다니는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불러놓고 하는 말이 자기가 지금부터 시나리오를 쓰려고 하는데 대박 시나리오를 쓸 자신은 있지만 써 놓고 나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으니 좀 도와달라고 했다. 망해가는 신생 영화사에 걸렸다가는 돈도 못 받고 엔딩 크레딧엔 이름도 못 올리고 양아치 같은 피디나 대표에게 아이템만 도용당할 우려가 있고 메이저 영화사에는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를 들이민다 해도 이미 구매는 했지만 제작은 못하고 있는 제법 괜찮은 시나리오들이 쌓여있을 테니 갖다줘 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아 걱정이라는 것이다.


마치 3년 전의 세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후배에게 어디서부터 무슨 얘기를 해줘야 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온라인 게임에 너무 빠져 주변에 영화하는 친구도 없고 포탈에 올라오는 뉴스도 안 보는게 분명했다. 일단은 무슨 시나리오를 쓰려는 건지 물어보았는데 후배는 나의 눈치를 보며 아직은 말할 단계가 아니라며 몸을 사렸다. 설마 내가 아이템을 도용할 것 같냐며 얘기 좀 해보라고 하니 그제서야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며 주변을 돌아보곤 장황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아이템 설명을 마친 후배는 대박이 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한참을 얘기하고는 절대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한다. 그러고는 형이 생각해도 잘 될 것 같지 않냐길래 나는 무릎을 탁 치며 진짜 재밌을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쳐 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후배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후배는 말은 잘하지만 평생동안 단 한 편의 시나리오도 완성 시킨 적이 없는데 이번에도 아마 오늘 하루 정도만 시나리오 써보겠다고 끄적이다가 내일 아침엔 다시 PC방으로 출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온라인 게임 세계의 거물이고 돈도 벌려고만 하면 제법 벌 수 있다는데 뜬금없이 평생동안 안 쓰던 시나리오 쓰겠다고 골방에 틀어박히는 것 보단 낫지 않을까?

덧글

  •  슈타인호프 2008/03/14 02:37 # 삭제 답글

    아이템 장사를 하는 편이 훨씬 수입이 좋을 듯 합니다(...)
  •  라엘 2008/03/14 02:45 # 삭제 답글

    그쵸. 아이템 장사는 바로바로 현금이니... (먼산)
  •  JINN 2008/03/14 02:55 # 삭제 답글

    으쩌쓰까...........T T
  •  네모도리 2008/03/14 09:10 # 삭제 답글

    [나는 진심으로 후배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진심임까? 정말? ^^
  •  Labyrins 2008/03/14 09:34 # 삭제 답글

    저 역시 그 후배에겐느 아이템사업을 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네요...-_-;;
  •  비타민 2008/03/14 14:02 # 삭제 답글

    아.....온라인 게임............... 정말 인생 망치기 딱 좋죠.... 저도 한때 잠시 빠졌었다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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