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여자 없는 남자들’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분명히 기억 나는 건 주인공의 운전기사인 미사키의 운전 실력에 대한 묘사다.
홋카이도 출신이라 어릴 적부터 눈길 운전에 단련되어 운전을 잘하게 됐다는 설정인데 하루키가 워낙에 묘사를 잘해서 글로만 읽는데도 미사키의 운전 실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도 미사키의 뛰어난 운전 실력이 어떻게 영상화됐을까였다. 순전히 미사키의 운전 실력을 감상하고 싶어서 본 건데 딱히 미사키가 운전을 잘하는 것 같지 않아서 실망했다. ‘분노의 질주’나 ‘제이슨 본’이나 라이언 고슬링의 ‘드라이브’에 나올 법한 자동차 추격 씬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 무미건조했다(딱 일본영화스러웠다). 딴짓 안 하고 안전하게 운전하는 스타일이구나 정도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운전 잘하는 걸 영상에 담는 건 어려운 도전 같긴 하다. 실제로 남의 차를 탔을 때 기사가 운전을 잘한다고 느낀 적이 딱 한 번 있다. 40대 후반쯤으로 추정되는 택시 기사님이었는데 진짜 막히는 도로였음에도 물 흐르듯 부드럽게 무리하지 않고 앞 차들을 추월하면서 그 흔한 급제동 한번 없는 거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 날 택시 뒷좌석에서 별생각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기사님의 운전 실력이 범상치 않음에 놀라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내려놓고 기사님의 운전 실력을 감상했던 기억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