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팀 직원 투덜이 A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 주에 사표를 낼 예정인데 그래도 우리는 정이 들만큼 들어 미리 말해주는 거니 섭섭해하지 말란다.
A는 일류 명문대학을 나온 후 유학생활을 하다말고 우리 회사에 들어왔는데 언제나 대기업 들어간 친구들과 자기의 처지를 비교하며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자학을 즐겨했었다. 영화계 경험이 전혀 없어 영화사의 4대 보험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이런 저런 수당이나 진행비의 미적지근한 집행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불평불만도 많았던 터라 지금까지 다닌 게 용하긴 했다.
지지난주에 A와 그의 상사가 점심을 먹은 후 둘이서만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한참 후에 나타난 적이 있는데 그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을 해 두었다는 것이다. A의 상사는 왜 그만두는지는 알겠는데 요즘엔 딱히 이직할만한 영화사도 없고 혹시나 회사 사정이 좋아질 수도 있으니 좀만 더 버텨보라고 하며 1~2주 간의 조정기간을 주었지만 A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영화계를 떠날 마음을 굳힌 마당에 회사 사정이 좋아지든 말든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A뿐만 아니라 또 다른 직원 새침떼기 B도 조만간 그만둘 거라고 하는데 기억을 되돌이켜보니 B와 B의 상사도 업무 시간 중에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한참 후에 굳은 얼굴로 나타난 적이 있었다. 아마 그 때 A와 마찬가지로 1~2주 간의 조정기간이 주어졌나 보다.
몇 달 전 말단 직원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 다들 회사가 망할 것 같다며 망하기 전에 딴 일 알아보겠다고는 했었지만 이렇게 빨리 실행에 옮기는 직원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친하게 지내던 직원들이 떠난다는 소식에 기분이 뒤숭숭해져 또 다른 직원 귀염둥이 C에게 전화를 해 보니 자기도 얘기는 들었다며 나의 계획을 물어보길래 나는 아직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했다. C는 대표의 총애를 받으며 오래 버틸 것 같았던 사람들이 의외로 제일 먼저 나간다며 제일 먼저 그만두겠다고 했던 자기 꼴이 우습게 된 거 같고 나보고는 나마저 자기보다 먼저 그만두면 미워할거라고 했다.
말로만 떠들다가 막상 진짜로 사직서를 낸다니 언제까지고 대표를 선장으로 한배를 타고 같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것 같았던 우리들의 다짐이 얼마나 부질없는 신기루였는지 실감이 난다.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 기사에 의하면 고용주는 우수한 직원이 사직서를 낼 때 애인에게 버림받을 때보다 더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한다고 하는데 한꺼번에 여럿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사직서를 내면 혹시 남은 직원들에게 더 잘해줄 것 같아 은근히 기대가 된다.
그러나 침몰하는 배가 다시 가라앉지 않기 위해 배 안의 짐들을 내버리듯이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남은 직원들을 경영상 해고해버린다면 짤리기 전에 알아서 나가느니만 못한 험한 꼴을 겪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빨리 팔릴만한 시나리오를 써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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