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리뷰 2017. 5. 9. 16:47
얼마 전 ‘문단 아이돌론’을 감명 깊게 읽고 문득 요즘 한국 소설은 어떤지 궁금해져서 새로 나온 소설 뭐 있나 찾아보다 김호연 작가의 신작이 벌써 나왔길래 어떻게 이렇게 빨리 쓸 수 있는 지 신기해서 읽어 보았다. 김호연 작가의 데뷔작 ‘망원동 브라더스’의 출간일이 2013년, ‘연적’이 2015년, ‘고스트라이터즈’가 2017년이니 집필 속도가 거의 더글라스 케네디급이다. 조금만 더 분발하면 역전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한국 중장년층의 독서 속도보다 빠르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아마도 작가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어서 그런 것 같은데 실제로 책도 마치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듯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잔치국수 먹듯 후르륵 뚝딱 읽힌다. 이번 작품도 다 읽는데 대충 두 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데뷔작 ‘망원동 브라더스’의 주인공은 만화가, ‘연적’은 시나리오 작가여서 한국에서 마이너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알 수 있어 좋았는데 ‘고스트라이터즈’의 주인공은 소설가여서 거기에 더해 한국 문단에 대해 갖고 있던 궁금증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이번엔 문학상이라고 다 같은 문학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듣보잡 문학상까지 다 똑같은 게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극중에 ‘세종 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문학상조차 메이저가 아니라고 안 쳐주는 줄은 몰랐다. 설상가상 일명 ‘문단의 카르텔’에 간택 받지 못한다면 정통 신춘문예 등단 작가조차 원고 청탁이 없고 단행본 계약도 뭣 같이 해주는 등 ‘신춘 고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안 쳐주는 문학상 출신’ 주인공은 ‘신춘 고아’인 선배의 소개로 어느 웹소설 작가의 대필 작가 즉 고스트라이터가 된 건데 덕분에 웹소설 시장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 소설만 봐선 정통 한국 문단보다 웹소설 시장이 훨씬 건전하고 바람직해 보였다. 카르텔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조회 수만 높으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의 운명을 설계하는 ‘당신은 내가 쓴 대로 살게 된다’는 판타지적 설정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스포주의) 주인공의 동료 고스트라이터이자 마이너 작가 성미은이 고군분투 끝에 웹소설 한 편 잘 써서 대박이 난 후 그간 자신을 함부로 대했던 이들을 무시하고 자신을 존중해 주는 사람들과만 축배를 나누는 부분은 정말 통쾌하고 감동적이었다. 힘들고 어렵던 시절에 함께 연대하던 작가와 굳이 연락을 주고받진 않았지만 멋 훗날 작품으로 소통하며 서로를 응원한다는 엔딩도 멋있었다. 알고 보니 무시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각 장의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쓰여 있는 글쓰기 관련 멘트들이 정말 주옥같은데 이대로만 쓰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중에선 10장의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글을 쓴다’가 가장 느낌 있다. 이 소설 자체도 그런 면이 있지만 작가 지망생들에겐 최고의 힐링 멘트 같다. 그런데 너무 조금씩 쓰는 건 문제가 있다. 작년 초쯤 저 멘트를 읽고 자극받아서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너무 조금씩 써서인지 도무지 진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