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0일 목요일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부킹

 


대표님과 성인 나이트에 갔다.


나이트에는 친구들하고만 가 봐서 대표님이 동행할 경우엔 어떻게 처신해야 될지 몰라 당황스러웠는데 다행히 대표님은 물 만난 고기처럼 열심히 부킹에 열중해주셔서 우리도 마음 편히 즐겼다면 거짓말이고 도저히 분위기에 적응이 안 되서 기본 안주 값마저 아까웠고 괜히 따라왔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 멤버로 나이트에서 뭘 하고 놀아야 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오질 않았는데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점잔 빼고 있으면 야성이 부족하고 남자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 같아 두려웠다.


설상가상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인턴은 나이트에 처음 왔는지 웨이터가 옆자리에 줄줄이 사탕처럼 여자 손님들을 릴레이로 앉혀줘도 시종일관 말을 걸기는커녕 초지일관 모른 척으로 일관했다. 참고로 나는 기본은 해주고 있었다. 한참 부킹에 열중하시던 대표님은 잠시 부킹녀가 화장실 간다고 도망간 사이에 옆자리에 앉아있던 나에게 아무래도 인턴을 잘못 뽑은 것 같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영화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훌륭한 영화인이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서 최소한 전국 100만명의 관객들을 후릴 수 있어야 되는데 이런 꾀죄죄한 변두리 성인 나이트에서 여자 하나 못 후리면서 어떻게 전국 100만 관객을 후릴 수 있느냐는 말씀이셨다. 어떻게 생각하면 맞는 얘기 같은데 또 어떻게 생각하면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말씀이었다.


봉준호나 김지운 감독이 변두리 성인 나이트에서 여자 손님들을 잘 꼬시기 때문에 한국 최고의 감독일까? 차승재 대표가 봉준호 감독을 변두리 성인 나이트에 데려가서 부킹 성공 확률을 체크해보고 <플란다스의 개> 연출을 맡겼을까? 심재명 대표가 김지운 감독을 변두리 성인 나이트에 데려가보고 <조용한 가족> 연출을 맡겼을까? 너그럽게 생각해서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봉준호나 김지운 감독 두 사람의 부킹 성공 껀수를 다 합친 것 보다 유지태 감독 한 사람의 부킹 성공 껀수가 많을 걸로 예상되는데 그렇다면 유지태 감독이 봉준호나 김지운 감독 두 사람을 합친 것보다 훌륭한 감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유지태 감독이 지금 한국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감독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훌륭한 감독일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대표님의 말씀은 말이 안됩니다 라고는 못하고 가장 나이가 많은 인턴을 스테이지로 끌고 나가 <대표님은 야성적인 인재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영화 산업에 있어서의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도전과 승부근성, 때로는 저돌적이고 때로는 전략적인 상황대응은 야생적인 본능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라고 니 안에 잠재되어 있는 야성을 분출시켜 자유롭게 지금 이 순간을 즐겨보라고 말해주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인턴이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길래 대표님이 우리가 못 놀아서 못 마땅해하는 것 같다고 솔직하게 귀뜸해주자 그제서야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대표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스피커에서 터져나오는 최신 트롯 테크노 메들리 리듬에 맞춰 열심히 쌍8년도에 유행하던 모내기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보고 있자니 영 어색하고 같이 춤을 추기도 어정쩡했지만 나도 열심히 춤을 추며 우리가 대표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대표님이 흐뭇한 표정으로 봐 주시길 바라며 테이블 쪽을 살펴보았다. 대표님은 우리가 스테이지에서 뭘 하는 지엔 전혀 관심없이 새로 온 부킹녀와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계셨는데 다행히 가장 나이가 많은 인턴도 눈을 꾹 감고 춤을 추고 있어서 대표님이 우리를 봐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면 비록 명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변두리 성인 나이트에서 이러고 놀아야 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 같다.

잠시 후 근육질의 남자 무용수들이 단체로 스테이지 위로 올라와 강남 호빠에서는 이러구 논다며 저질 댄스를 추기 시작했고 우리는 여자 손님들의 환호성을 뒤로 한 채 테이블로 돌아갔다.


택시비가 아까운 밤이었다.

덧글

  •  지랄탄 2008/03/25 08:09 # 삭제 답글

    정우성 감독님이 출동하면 어떨까?
  •  네모도리 2008/03/25 09:15 # 삭제 답글

    정!
  •  Cloud 2008/03/25 09:28 # 삭제 답글

    우!
  •  구우 2008/03/25 09:35 # 삭제 답글

    성!




    .. 즐겨찾기를 해 두고 와서 보고 가곤 했는데
    위 두 분의 정!우! 를 보니 손가락이 근질거려서 그만..
  •  교보문고죽돌이 2008/03/25 09:42 # 삭제 답글

    정우성이 유지태보다 낳나요?
  •  제리 2008/03/25 10:25 # 삭제 답글

    서점죽돌이: 낳나요->낫나요
  •  타선생 2008/03/25 11:40 # 삭제 답글

    아아..
    기본 안주 값 뿐만 아니라
    택시비가 아까운 밤이 오다니요.
  •  봉준호나김지운 2008/03/25 11:42 # 삭제 답글

    이젠 어이가 없다
  •  로얄제리 2008/03/25 13:11 # 삭제 답글

    여기 글 볼때마다 통신시절 열심히 보았던 엽기적인 그녀가 생각나요.ㅋ 이 글도 언젠가 출판되서 영화화될지도 모르겠네요.ㅋㅋ 마지막엔 아름다운 여자와 로맨스? -ㅅ-;;;;;
  •  구들장군 2008/03/25 13:52 # 삭제 답글

    저도 참 재미없는 사람인데... 남의 얘기 같지가 않네요. -_-;;
  •  비타민 2008/03/25 15:20 # 삭제 답글

    마지막 근육질의 남자 무용수가 등장하는 부분이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되겠군요.
    애드맨님의 글을 읽으면 장면 장면이 머릿 속에 그려집니다. 호빠에서 유행하는 춤을 추던 남자 무용수들의 얼굴까지도요. :)
  •  동사서독 2008/03/25 15:28 # 삭제 답글

    학창 시절의 '유지태'라면,

    박찬욱, 류승완 감독에게 부킹에서 밀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봉준호, 김지운은 오해를 살만큼 자주 등장하는데, 박찬욱 감독 이름은 없군요. )
  •  땅콩샌드 2008/03/25 16:00 # 삭제 답글

    류승범의 감독 데뷔. 류형제!
  •  자오 2008/03/25 17:12 # 삭제 답글

    왠지 마음이 찡하네요....;_; 뒤늦은 링크신고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지랄탄 2008/03/25 17:12 # 삭제 답글

    학창시절의 유지태는 한참 모델로 주가 올리고 있었습니다. 과연 아저씨들한테 밀릴까요?
  •  술과고기 2008/03/25 18:03 # 삭제 답글

    나이트... 부킹... 이젠 뭘 말해야 할까요...
  •  포토그래머 2008/03/26 09:26 # 삭제 답글

    아아 ~ 너무 웃겨요 ㅋㅋ
    오랜만에 와서 잘보고 가요~
  •  뇌를씻어내자 2008/03/26 15:14 # 삭제 답글

    전 그 대표님의 연세가 궁금.
  •  동사서독 2008/03/26 16:02 # 삭제 답글

    제가 말한 학창시절의 유지태는 뚱땡이 시절 유지태
  •  라엘 2008/03/27 23:23 # 삭제 답글

    랄라 랄라. 그 썰렁한 변두리 나이트가 완전히 눈에 보여요. 진짜 이거 소설이든 영화든. 뭔가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윗분 말씀대로, 엽기적인 그녀(혹은 소녀시대?)만 등장하시면 진짜 영화될 듯 ^ㅅ^
  •  충격 2008/03/28 16:06 # 삭제 답글

    유지태씨는 화면으로 보면 안 그런 것 같은데
    실물로 보면 지금 봐도 (라곤 해도 2004~2005년 얘기지만)
    떡대가 장난 아니던데요. 키도 큰데다 덩치도 있고.
  •  진짜 연대 졸업생2 2008/03/30 15:44 # 삭제 답글

    저는 연대 졸업하고 허접한 영화사에 취업했다 후다닥 도망나온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정신차리고 조금 작은 대기업에 취직해서 그럭 저럭 살고 있습니다.

    진짜연대졸업생님의 글을 보니 손가락이 근질거려서요.

    내 팔자에 영화는 그냥 꿈이었나봅니다.
  •  애드맨 2008/03/30 19:29 # 수정 삭제 답글

    저는 이제 나이트 안 갑니다;;
  •  real _ysU3 2008/04/01 03:26 # 삭제 답글

    I am a real Yonsei University graduate. (I can call myself as No. 3)
    I was also working at the minor film industry. It was fun but it was a really back breaking job.
    Most of people in my company were passonate about making movie.

    I met a girl on the blind date. After finding out my job and income, she said she wasted her time and her match maker lied to her family. After a couple of incidents like that, my parent was embarrased and started to talk about my future career.

    Now I got a decent job and nice family.
  •  은재 2008/04/04 07:38 # 삭제 답글

    택시비가 아까운 밤...ㅎㅎㅎ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영양가

 


갑자기 뭔가 부탁할 일이 생겨 망해가는 영화사를 대학교 동아리 탈퇴하듯 그만둔 전직 엘리트 인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열 두어번 울리더니 소리샘으로 연결되었다.


설마 그래도 한 때는 한 식당 테이블에서 5천원짜리 백반을 나눠 먹던 사이였던 전직 엘리트 인턴이 해가 중천에 뜬 화창한 대낮에 내 전화를 받지 않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마도 극장에 있거나 도서관에 있거나 자고 있거나 목욕 중이거나 등등 내 전화를 받지 못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거니 싶어서 1시간 정도 지난 후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이번에도 통화는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은 두 번 밖에 전화를 걸어보지 않았고 삼세번은 기본이란 생각에 혹시나 해서 30분 정도 지난 후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봤지만 역시 통화는 되지 않았다. 내 전화를 피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확인사살 차원에서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다. 문자는 괜히 보낸 것 같다.


전직 엘리트 인턴은 아마도 내 전화 받아봤자 아무런 영양가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 따위의 전화를 받아봤자 자신의 인생에 도움 될 일은 커녕 귀찮기만 할 거란 생각에 전화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억울해서라도 이대로 망해가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조만간 대박 영화를 만들어 전국 관객 500만명을 돌파시켜 대박 영화 기획자가 되자. 그리고 언제나 괜찮은 기사가 많이 실려있는 영화 주간지 필름2.0에서 인터뷰 제의가 오면 마지못해 수락한 다음 (씨네21의 인터뷰 제의는 두 번 정도는 거절할 생각이다) 내가 몸 담고 있는 망해가는 영화사가 한참 망해갈 때 망해가는 영화사를 대학교 영화 동아리 탈퇴하듯 그만둔 전직 엘리트 인턴이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 따위의 전화를 받아봤자 자신의 인생에 도움 될 일이 하나도 없을 거란 생각에 끝까지 내 전화를 받지 않는 걸 보고 반드시 대박 영화를 만들어서 보란 듯이 성공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우스개 소리처럼 해 주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날 우연히 전직 엘리트 인턴이 지하철 같은 곳에서 필름2.0을 돈 주고 사서 보다가 한 때는 자기가 전화조차 받지 않았던 무능력하고 시니컬하기만 했던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이 대박 영화를 만들었지만 이게 다 훌륭한 감독과 물건을 볼 줄 아는 투자사 덕분이라고 겸손한 척 하며 인터뷰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 때 내 전화를 세 번 연속으로 받지 않고 문자에 답장도 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되겠지...??


그냥 웃자고 해 본 소리였고 사실 나도 영양가 없어 보이는 무능력한 지인의 전화는 어지간하면 받지 않는 편이라 엘리트 인턴을 비난할 입장이 아니다. 흥행참패라는 형극의 가시밭길을 걷고 계시는 몇몇 감독님들의 전화를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이유로 여러 번 무시했고 지인들이 모니터 좀 해달라며 보내줬지만 한 장도 읽지 않은 시나리오들이 내 컴퓨터 속 폴더 안에 1기가는 될 것이다. 물론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영양가 있어 보이는 지인들의 전화는 전화벨이 세 번 이상 울리기 전에 받는 편이고 그런 지인들이 문자를 보내면 대부분 전화 통화로 화답했다.


이런 게 인과응보라는 걸까?

덧글

  •  술과고기 2008/03/22 04:50 # 삭제 답글

    시나리오로 1기가라면 그 양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요... 자신의 꿈을 쫓는 사람들이 많다라는 걸 알았습니다.
  •  네모도리 2008/03/22 08:15 # 삭제 답글

    웃자고 한 이야긴데 왠지 가슴을 후벼파는군요
  •  krzys 2008/03/22 08:27 # 삭제 답글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를 읽고 나면, 세상 사는 게 무서워져 갑니다. 더불어 애드맨님도요. 물론 제일 무서운 건 저고요.
  •  라엘 2008/03/22 12:54 # 삭제 답글

    ??에서 두번 웃었고요.

    인과응보라기보다 글의 내용은 인지상정?
  •  동사서독 2008/03/22 16:48 # 삭제 답글

    직장인의 삶이 이렇게 힘든 것인가...라고 안타까워하다가 백수인 제 신세를 깨닫고 OTL
  •  애드맨 2008/03/23 02:17 # 수정 삭제 답글

    술과고기님 // 죄송요. 과장법이었습니다. 1기가까지는 안됩니다ㅎ;;;

    네모도리님 // 안 웃겼다면 죄송요;;;

    krzys님 //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ㅜㅜ

    라엘님 //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동사서독님 // 안타까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러브햏 2008/03/23 16:13 # 삭제 답글

    믿는데로 이루어진다 라고 했습니다.
    지금이야 공상하듯이 쓰신 글인거 같지만,
    시작은 다 꿈과 공상 아니겠습니까?
    껄껄 이렇게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들려서 즐거운 글 읽고가는 독자들도 많으신거 같고요.
    꼭 성공하시길 빌겠습니다. :) 아니 성공하실거 같은데요?
  •  러브햏 2008/03/23 16:14 # 삭제 답글

    PS 그래야 성공하고 그 이야기를 또 여기에 올려주실테니,
    기대할게요.
  •  애드맨 2008/03/23 21:17 # 수정 삭제 답글

    러브햏님 // 저도 자주 방문하겠습니다. 기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이런. 2008/03/24 10:44 # 삭제 답글

    아마 그 인턴은 지금쯤 외국에 있을 것 같은 느낌....
    있는 사람들은 이럴때 머리도 식힐겸 외국에 나가더라구여...
  •  은재 2008/04/04 07:31 # 삭제 답글

    문득, 시나리오 좀 읽어봐 달라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영화사 기획실 언니에게
    네이트온으로 시나리오를 전송한 사실이, 확 걸리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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