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0일 월요일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명함들

 


나의 사무실 책상 서랍 속에는 미처 뿌리지 못한 명함들이 고이 모셔져 있다.


입사 당시에 회사에서 명함을 총 네통 받았는데 세통은 아직 뚜껑도 안 열어봤다. 맨 처음 명함을 받고나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명함을 돌리고 간간히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명함을 돌리고 업무 관계상 진짜 필요해서 명함을 돌리고도 남아서 일가 친척 가족들에게까지 명함을 돌렸는데도 아직 세통이 남았다.


회사가 잘 나가던 시절에는 명함을 신나게 뿌리고 다녔는데 회사가 망해가는게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는 누굴 새로 만나도 굳이 명함을 꺼내 건네는 수고를 하지 않았더니 어느새 이렇게 명함이 산더미처럼 쌓여버렸다. 생각해보니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명함을 받는 횟수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 할 일도 없는 영화 업종 불황과 영화업계 종사자들 명함 거래 횟수의 상관관계에 대해 조사해볼까?


친구에게 책상 속에 쌓여있는 명함을 볼 때마다 인맥도 없고 무능해보여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다고 했더니 나이트에 가서 부킹할때 뿌리거나 길거리에서 맘에 드는 사람 만날 때마다 한 장씩 줘 버리라고 하던데 회사가 망하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집에도 회사 이름만 다른 내 명함들이 대여섯통 더 있는데 푸짐하게 쌓여있는 명함을 볼때마다 명함을 처음 받았을 때의 의기양양하던 기분과 더 이상 그 명함에 적힌 단체 소속이 아니게 될 때의 씁쓸했던 기분이 되살아나 가슴이 아파온다. 독한 맘 먹고 확 불태워 버리려고도 했는데 그래도 미우니 고우니 내 이름 세 글자가 적힌 명함이어서 차마 버리진 못하고 간직해오다보니 어느새 내 책상 속엔 명함으로 만들어진 산더미가 자리를 잡게 됐다.


나에게 명함을 건넬 때의 예절을 가르쳐 준 영화사는 더 이상 영화사 고유의 영업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내가 다니던 시절 뿐만 아니라 회사가 생긴 이후 한번도 수익을 낸 적이 없는 그 영화사는 내가 나갈 때쯤엔 사무실도 부동산에 내놨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알고 지낸 감독 중 한 명은 하얀 종이에 자기 이름과 전화번호만 달랑 적힌 명함을 직접 만들어서 나눠주고 다녔는데 비록 그가 만든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가 만든 명함만큼은 심플하고 실용적이라 보는 사람들마다 잘 만들었다고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 신분으로 할 소린 아니지만 영화사에서 명함을 디자인할 때 회사 이름을 명함 귀퉁이에 조그맣게 인쇄해서 회사는 망하더라도 회사 이름이 적힌 귀퉁이를 잘라내고 재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주면 좋겠다.


아껴야 잘 산다는 명목으로 사무실 형광등 절전 캠페인이 시작됐다. 사무실에 형광등 몇 개 안 켠다고, 고용된 청소부 아주머니를 해고하고 우리가 학교 다닐 때처럼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며 사무실 청소를 한다고 해도 망해가던 회사가 살아나진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분위기지만 다들 일단 올해는 어떻게든 넘겨보자는 생각인 것 같다.

과연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 신분으로 송년회를 할 수 있을까?

덧글

  •  2007/10/08 21:3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애드맨 2007/10/08 23:04 # 답글

    비공개님 // 훈훈한 멘트네요. 제가 그래드리고 싶습니다.ㅎㅎ
  •  ArborDay 2007/10/08 23:10 # 답글

    물론 영화사에 비할바야 아니겠지만, 소속이 자꾸 바뀌는 저 같은 사람도 귀퉁이 잘라내기 아이디어에 동감합니다. 솔직히 밝히자면 눈팅은 계속 해오고 있었는데 덧글은 처음인가봅니다. 여하튼 링크신고.
  •  애드맨 2007/10/08 23:13 # 답글

    ArborDay님 // 저도 공포영화 좋아합니다 ^^
  •  laxel 2007/10/09 00:10 # 답글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들. 이거야 말로 좋은 아이템 아닌가요!!ㅎㅎ 저역시 계속 몰래 몰래 보고 있었어요 리플은 처음입니다. ㅎ
  •  애드맨 2007/10/09 00:33 # 답글

    laxel님 // 그런가요? 영화 인생을 걸고 본격적으로 다뤄볼까요?ㅋㅋ
  •  NINA 2007/10/09 01:32 # 답글

    저는 음식점마다 있는 명함 넣으면 매달 추첨해주는 거기.. 마구 뿌렸더니 당첨됐어요~ 하하하;
  •  laxel 2007/10/09 02:27 # 답글

    네네~ 본격적으로~! ㅋㅋ
  •  애드맨 2007/10/09 10:58 # 답글

    NINA님 // 굿아이디어입니다!
    laxel님 // 생각해보겠습니다.ㅋㅋ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자유시간

 


회사가 망해가니 점점 사내 자유 시간이 많아진다.

출근 시간이 자유고 외부 미팅도 자유고 시사회 참석도 자유고 퇴근 시간도 자유다. 회사가 잘 나갈 때는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하는 직원에게 사사건건 시시콜콜 잔소리하는 직원이 있었는데 요즘엔 아무도 서로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 잔소리 직원마저 요즘엔 프리스타일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미 사표를 내고 퇴직날까지 받아놓은 직원이 두명이나 있으니 굳이 비교하자면 초등학교 학년말 파장 분위기와 비슷한 것 같다.


회사에서 사 주는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하다가 근처 영화사에서 일하는 친구를 불러내 커피빈에서 장시간 잡담을 나누었다.


이 동네 커피 전문점에는 동종 업계 종사자들이 많아 회사 뒷담화를 나눌 땐 괜시리 신경이 쓰인다. 조용히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주변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기울여 보면 늘씬한 언니들과 계약 얘기를 하고 있는 매니저가 있고 우리 회사 어렵다고 푸념하는 영화사 직원이 있고 새로 쓴 작품 모니터를 받는 작가가 있고 자기를 부당대우한다고 분노하는 감독이 있고 자기가 아는 대단한 파워맨 이름을 열거하는 피디도 있다.


매니저들은 훤칠한 차림새이긴 하나 뭔가 믿음이 안 가게 생겼고 작가, 감독, 피디들은 훤칠과는 애초에 거리가 먼 차림새고 웃고 있어도 웃는게 아닌 뭔가 찌든 인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눈에 보면 알 수 있다. 그래도 비교를 하자면 매니저, 작가, 감독, 피디, 영화사 직원중 가장 후줄근하고 초라한 쪽은 작가들이다. 작가들은 감독이든 피디든 영화사 직원이든 누구와 함께 있더라도 언제나 살짝 기가 죽어 있는 저자세이기 때문이다.


근처 영화사에서 일하는 친구와 조용히 뒷담화를 나누고 있을 때 뒤쪽 테이블에서 작가와 피디가 나누는 얘기가 들려왔다. 둘은 만난지 얼마 안 됐는지 그 동안 자기들이 참여했던 영화들과 아는 영화인 이름을 두서없이 늘어놓으며 몇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확인하며 반가워하는 중이었다. 그 아는 사람들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도 있었고 내 친구가 아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몇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는 건 이제 그리 신기하지도 반갑지도 않다. 별로 인상적인 대화가 아니었음에도 기억하는건 대화 내내 여자 피디가 피워대는 담배연기가 내쪽으로 계속해서 날아왔기 때문이다.


친구와 헤어진 후 회사에 들어왔는데 다들 미팅에 시사회에 알 수 없는 이유들로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놀다 들어올걸 하고 잠시나마 후회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이미 사표를 내고 퇴직날을 받아둔 투덜이 직원이 메신저로 말을 걸어와서 또 한참을 사내 채팅으로 시간을 보냈다. 할 일도 없고 인수인계할 직원도 없는데 왜 몇 일 더 다니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길래 할 일 없으면 잡코리아라도 뒤져보라고 조언해줬다. 투덜이는 이미 뒤지고 있는데 영화사 구인 공고는 거의 없다고 또 투덜댔다.


시사회에 갔던 직원들이 그 영화 쪽박이라고 걱정하며 들어왔고 넘버원은 어디있는지 모르겠고 넘버투는 일드 삼매경이니 나는 슬슬 퇴근 준비나 해야겠다.

덧글

  •  N 2007/10/08 20:48 # 삭제 답글

    잡코리아에 기업회원 아이디로 가입을 해서...
    이력서 뒤져보면서 개인정보 자료를 싸그리 모으는 작자들이 있더군요...

    웃긴건 그 정보를 통해 스팸을 보내는 놈들이 만든 내용을 보면...
    마치 자신들은 잡코리아와 제휴 광고 email을 보내는 척 가장을 한다는겁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조잡하게 티내서 말이죠...

    인터넷에서 개인정보를 마음 먹고 모으는건 정말 누워서 떡먹기인가봅니다...
  •  애드맨 2007/10/08 21:25 # 답글

    저런...이력서 비공개로 설정해두길 잘했네요.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평판 조회

 




영화가 다양한 사람들과 모여서 하는 일이다보니 잊을만하면 한번씩 정기적으로 오는 전화가 있다. 바로 내가 아는 혹은 나와 함께 일했던 아무개의 평판 조회 전화다.

평판 조회란 한팀에서 영화일을 하려는 사람에 대해 예전 팀에서 함께 일했던 스텝들이 어떤 평가를 하는지 조사하는 것이다. 생각은 필요없고 주로 윗사람의 명령을 따라 몸을 쓰는 실무적인 현장일이라는게 학벌 등의 간판이나 토익 점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에 믿을 거라곤 평판 조회 뿐이다. 평판 조회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을 잘한다는 증거가 되는 작품 수 뿐인데 참여한 작품 수를 늘리려면 평판 조회가 좋아야 하니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다.


별 상관은 없는 얘기지만 예전에 해외 로케 100프로인 모 영화에서 영어는 필수고 제2외국어까지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연출부를 뽑은 적이 있다는데 다 뽑아놓고는 영화가 엎어졌다고 하니 평판 조회 이외의 기준으로 연출부를 뽑아도 결국은 잘 안되나 보다.


나는 모질지 못한 편이라 누군가 아무개가 어떠냐고 물어오면 응 사람 좋아. 착해. 라는 식의 대답을 주로 하는 편인데 평판 조회를 한 두명에게 하는 것이 아니어서 같이 일하기 부담스러운 느낌의 스텝은 결과적으로 평판 조회에서 그리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같이 일하던 영화인 중 한 명은 자기가 아는 충무로 영화인이 수백명이기 때문에 내 눈에 나면 다신 충무로에 발 못 붙일 줄 알라며 자기 말을 잘 들어야 충무로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다고 했었는데 지금 그 스텝은 영화일을 하고 있지 않다. 또 다른 어떤 영화인 한 명도 뭔가 기분이 나쁠때마다 수 틀리면 충무로에 소문 내버리는 수가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는데 역시 그 분도 영화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다른 사람에게 들은 바로는 나에 대해 엄청나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는 영화인도 있었다는데 그 분 역시 지금은 영화일을 하고 있지 않다.


공교롭게도 영화계에서 절대적인 권력이 있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사람치고 오래 버티는 사람을 못 본 거 같은데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동안 만났던 한때 영화인이었으나 지금은 아닌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영화일을 오래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10년만 버티면 개나 소나 감독한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망해가는 영화사에서도 수틀리면 인사고과에 반영해버린다는 말을 즐겨하는 사람이 있긴 한데 그 직원이 영화일을 그만두기 전에 회사가 먼저 망할 것 같다.


내가 망해가는 영화사에 흘러들어와 비공식 업무일지를 연재하게 된 건 영화인 평판 조회에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으니 자기에게 복종하라는 말을 즐겨했던 몇몇 영화인들과 사이가 나빳기 때문일까? 적어도 이 블로그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다시는 좋은 평판 조회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말로만 듣던 다시는 발도 못 붙이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려나.


인사고과고 평판조회고 뭐고 이번 달 월급이나 빨리 줬으면 좋겠다.

신정아 사건 이후 기업들 채용기준 ‘간판보다 평판’으로

덧글

  •  하아 2007/10/06 18:55 # 삭제 답글

    저 역시 면접가서 예전에 일했던 곳의 대표님과 아는사이면 좋고 나쁨을 떠나 당황하고는 하지요.
    일했던 기간 길었어도 비해 나올때 좋지 않은 인상을 주고 나온곳은 아예 이력서에 쓰지 말까 생각중이예요.
    여튼 이런 평판조사가 필요한건 사실이지만, 그 후 그 전쪽 사무실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멋쩍은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인듯 합니다.
  •  애드맨 2007/10/06 20:33 # 답글

    많이 당황스럽죠 ㅎㅎ
  •  RIRUKA 2007/10/06 22:35 # 삭제 답글

    연예계(?)가 그럴싸해 보여도 사실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부분은 한정되어 있고, 특성상 종사자 중에는 겉과 속이 다른 양반들이 워낙 많아서인지, 유독 평판조회가 활발(?)한 분야인듯 합니다.
    저도 평판 조회 전화를 가끔 받습니다만, 그냥 좋다 좋다 얘기해줍니다.
    내 한마디에 사람 인생이 걸려있다고 생각하면 야박하게 못하겠더군요. 남들은 어떻게 얘기해줄 지 모르지만 말이지요.

    사람을 고르는 것도 CEO의 능력인데, 매사가 남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을 평가하는 대표들이 많다보니 나도 곤란하고, 구직자도 곤란합니다.
  •  애드맨 2007/10/06 23:06 # 답글

    RIRUKA님 // 분명히 그럴싸할게 없는데 그럴싸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은 언제나 존경스럽습니다.
  •  카렌 2007/10/06 23:50 # 답글

    저도 한때 영화인이었고 그러고 싶지만 그들이 아무 영향을 못주는게 서글프군요,
  •  애드맨 2007/10/07 00:49 # 답글

    카렌님 // 한때 영화인이었다니 선배님이시겠군요. 반갑습니다.
  •  이방인 2007/10/07 03:05 # 답글

    바닥이 좁은 곳일수록 소문은 소설이 되는 것을 경험해 본바, 그것이 대입하기 딱 좋은 공식은 아닐 지언정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조금은 느끼고 있는 지나가던 1人.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연예 스타 인맥

 


간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제법 친했는데 대학교 진학과 동시에 전국 팔도강산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한동안 연락이 두절됐다가 서울에서 사회 생활하며 하나 둘 씩 만나게 된 친구들이다.


만나자마자 삼겹살에 소주로 달렸으나 1시간 30분만에 이야기 꺼리가 다 떨어져버렸다. 남자 넷이 만났는데 딱히 열 올리며 할 말이 없었다. 각자 다른 업종에 종사하고 있고 떨어져 지낸 공백기가 너무 커서인지 정말 1시간 30분 이상 할 이야기 꺼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연예계(?)에 종사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동안 직접 실물을 본 연예인 이름을 열거하지 않았다면 1시간만에 계산 끝내고 헤어졌을 것이다.


내가 다니는 망해가는 영화사의 이름을 아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투자나 제작 그리고 기획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사실 나도 투자, 제작, 기획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다. 하여간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나는 영화일을 하는 영화인이었고 당연히 알고 지내는 연예인이 몇 명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모 연예인과는 가끔 전화 통화도 하는 사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분위기를 띄우려 했는데 그럼 한번 전화해보라는 친구가 있어서 당황했지만 지금 시간이 너무 늦어서 예의가 아니라고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다.


내가 알고 있는 연예인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만 알고 상대방은 나를 모르는 관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바닥에 있지 않은 친구들에게 연예인을 직접 봤다는 사람의 경험담은 30분 정도는 이야기를 더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가치는 있는 것 같다.


직접 본 연예인 이름을 다 열거하고 난 후 야하고 부질없는 여자 이야기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는데 누군가 갑자기 여기서 이러구 있지 말구 나이트나 가자고 호기를 부리는 바람에 곧장 택시를 잡아 삼겹살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나이트로 향했다.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 넷이서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그냥 헤어지기는 너무 이르고 해서 대안이 없었다.


호기부렸던 친구가 웨이터에게 팁을 후하게 줬는지 끊임없이 자리로 여자 손님들을 데려와 앉혔다. 나는 빨리 집에 가서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호기부렸던 친구 빼곤 다 내 마음과 비슷해 보였다. 게스트로 80년대에 날렸던 댄스가수가 나와 왕년의 히트곡들을 메들리로 부르며 분위기를 띄웠는데 다음에 누굴 만나면 아무개 댄스가수를 직접 본 적이 있다고 자랑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웨이터에게 손목이 잡혀 끌려온 여자들중 몇몇은 나에게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OO영화사에 다닌다고 했는데 망해가는 영화사의 이름을 알고 있는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중 한명이 영화사에서 일하면 연예인 많이 봐서 좋겠다고 했는데 아는 연예인 별로 없다고 사실대로 말해줬다.


그들에게 나는 나이트에 와서 제일 저렴한 기본 메뉴만 시킨 테이블의 남자일 뿐이다.

덧글

  •  모모맨 2007/10/04 06:35 # 답글

    저는 그 기본요금에 추가 시킬수 있는데도 물버린다고 내쫒기는 연상의 아저씨 입니다.. 오늘도 출근해야지요.?
  •  RIRUKA 2007/10/04 17:55 # 삭제 답글

    저는 망해가는 연예인 소속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쥔장님과 알듯 모를듯한 동질감이 댓글을 쓰게 하는군요.
    저도 아는 연예인 별로 없습니다.
    꼴도 보기 싫은 기획사 사장들(= 깡패)만 많이 압니다.

    남들은 제가 소속사 다닌대니까 대단한 줄 알더군요
  •  애드맨 2007/10/04 22:26 # 답글

    모모맨님 // 그래야지요^^
    RIRUKA님 // 듣기만 해도 동질감이 느껴지네요. 반갑습니다!
  •  마리 2007/10/05 10:27 # 삭제 답글

    전 망해가는 영화 잡지사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결국은 망했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 기자로 일한다니까 배우들 많이 만나는 줄 알더군요.
    찌질하게 집적대는 감독들을 더 많이 만났습니다 .
  •  joyce 2007/10/05 16:01 # 답글

    우연히 들렀다가... 링크 신고하고 갑니다.
  •  애드맨 2007/10/06 01:38 # 답글

    마리님 // 찌질하게 집적대는 감독들이라니 저도 아는 분일수 있겠습니다ㅎㅎ
    joyce님 // 감사합니다.
  •  마력덩어리 2007/10/16 21:08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  라엘 2007/10/27 15:00 # 답글

    푸핫핫핫. 저는 망해가는 엔터사 직원입니다. 링크 안할 수가 없네요! 링크 신고합니다!!!!
  •  dew 2008/04/15 15:37 # 답글

    푸하하하핫! 저는 이미 망한 외주제작사 미술팀직원이었습니다!!! 드라마 엎어져서 월급 3개월치 못 받고 나왔습죠!!!!
  •  ㅂㅂㅂ 2008/05/16 15:09 # 삭제 답글

    리플만 읽어도 눈물이 발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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